농협 부안군지부(지부장 남 궁두)가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려고 지역농협과 협력하여 친 환경 농업을 앞장서 실천하는 농가를 적극 지원하는 등 농가소득 증대에 앞장서 선도 농협으로 거듭나고 있다.
더욱이 남 지부장은 지역사회 고향을 발전하려고 부안군과 협력한 지자체 협력사업으로 오디 뽕 사업과 부안군 쌀 브랜드인 “천년의 쌀” 홍보는 물론 하,추곡수매현장을 쫓아 다니면서 수고하신 고향의 선·후배들인 농업인의 거친 손을 잡아주며 농가의 소득증대에 온 정성을 쏟아부어 잘사는 부안을 건설에 앞장서 왔다.
특히 남 지부장은 지난해부터 부안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등에 총 6회에 거처 백미 20㎏ 300여 포대를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어릴적 책이 없어 공부를 못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부안군 농촌학교에 도서를 기탁하기도 했다.
지난해는 모 은행의 끈질긴 금고 빼앗아 가기 직전에 “농협”이라는 조직과 끈끈한 인맥들의 도움과 군민의 성원에 힘입어 군 금고 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였으며 금년에는 A지역 농협과 B지역 농협의 필요성을 느끼고 수차례 관련 지역 조합원과 임 직원의 설득으로 합병을 추진하는 쾌거를 이루어 남 지부장의 탁월한 경영노하우를 발휘, 도지부에서 그 능력을 평가 받기도 했다.
남 지부장은 농협 대를 졸업하고 지난 1975. 3월 옥구군조합에 첫발 내딘후 그해 10월 부안군조합에 근무한지 33여 년 만에 고향에서 금년 말 정년을 맞게 됐다.
남 지부장은 인생 사가 항상 태산의 고봉이 있으면 골짜기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지날 때면 이제 어려움이 다 지났는가 하다가도 다시 내리막 길을 걷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듯 가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었고 농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 날밤을 세며 고민할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항상 마음속에 자리한 것은 우리 나라 농업, 농촌, 농업인에게 어려움의 골이 깊어지면 그 아픔을 농협이 함께 누가 있어 함께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부모님이 농삿일을 천직으로 삼으셨으며, 저 자신이 농촌에서 태어나, 농업학교에 다녔고, 농협에 근무하게 되는 행운을 얻은 사람으로서 農者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책임감이 마음 깊숙이 생각하며 살았었고 모든 일을 "나 자신이 수양이 덜 된 탓이요, 나에게 주어진 운명의 일부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 그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삭일 수 가 있었다.
누구나 직장 생활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항상 양지만 있는 것이 아니듯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었고 전북지역본부 검사과장을 하면서는 원칙과 소신에 입각한 업무처리로 본의 아니게 직원들한테 서운하게 한 적도 있고 금고 추진과정에서는 당치 않은 요구에 황당할 때도 있었다고 말 끝을 흐렸다.
농협이라는 크나큰 울타리를 떠나 수많은 애증을 함께 한 세월이지만 그래도 항상 농협이라는 하우스 안에서 그러나 이제 보호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들판에 홀로 남은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항상 농협인으로 남아 농협의 발전과 지역을 지켜보는 파수꾼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남 지부장은 지난 반세기 한국 농업을 뒷받침해온 농협도 시대적 요구인 만큼 피할 수 없는 사업구조개편은 개편하면 한국농업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는 식의 정부논리는 농정 실패의 책임을 농협에 전가하는 눈가리고 아웅 하는 수법이라 생각하며 농협 안이든 정부의 입법예고 안이든 목적은 농업인 조합원 실익증대에 맞춰져야 하며 부족 자본금은 정부가 조건없는 출연금으로 지원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젊음 반평생을 함께 농협, 비록 권력은 없지만 그렇기에 무한 봉사하기가 가능한 직장으로, 제가 다시 태어나도 농협을 직장으로 선택하고 싶다고 늘 말하는 남 지부장은 농협이 농업, 농촌, 농업인과 함께 정부의 새로운 사업구조 개편안에 의하여 21세기 새만금과 웅비하는 부안군의 지역발전과 함께 호흡하는 "고마운 농협, 꼭 필요한 농협"으로 거듭나길 후배들에게 당부하며 끝을 맺었다. 부안=이옥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