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정상회담의 후속조치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155마일 휴전선에선 이미 대북·대남방송이 멈췄다. 북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카드가 공개됐고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표준시도 하나로 맞춰졌다. 이산가족상봉이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가동 등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춘래불사춘인줄 알았더니 남북관계에 진짜 봄이 온 듯하다. 따뜻한 훈풍이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불안함 보단 기대감이 훨씬 우세하다는 점도 이번 훈풍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 진정성은 고스란히 남북 양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담겼다.
이런 훈풍에 실려 요즘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게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Grunes Band)'다. 옛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에 보존된 독톡한 녹색지대를 말한다. 통일 독일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냉전시대 분단 독일은 870마일 '철의 장막'으로 대변된다. 이곳에 조성돼 있는 게 바로 그뤼네스 반트다.
그뤼네스 반트는 '녹색 띠'로 번역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와는 의미를 달리한다. 그뤼네스 반트는 지난 1989년 독일 환경단체 '분트(Bund fur Umwelt und Naturschutz Deutschland)'가 시작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철의 장막은 그 지역 자연생태계에는 축복이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서 온전히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뤼네스 반트는 엘베강 일대와 하르츠 산맥 국립공원, 그리고 튀링겐 숲과 프랑켄 숲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곳에는 가시검은딱새, 야생때까치, 붉은등때까치 등 109종의 동물 서식지가 있다. 이 중 48%는 독일 멸종 위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 그뤼네스 반트가 있다면 한반도에는 비무장지대가 있다.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248km의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폭 4km 정도의 긴 띠 모양의 지역을 말한다.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이곳도 인간의 간섭이 제한되면서 생태계의 보고로 남아있다. 닮아도 꼭 닮았다.
그뤼네스 반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이끌어냈다는 데 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로 자연훼손을 최소화했고 중간중간에 안내소와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해 관광객도 끌어모았다. 자연관광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마침 4·27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달 중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물꼬가 트였으니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한반도 위에 펼쳐질 제2의 그뤼네스 반트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