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스스로 일어나게 놔둬”라는 나의 어쭙잖은 조언에 친구는 이렇게 대꾸한다.
“너도, 새끼 낳아봐.” 친구는 웃으며 한 얘기지만 옳은 지적이다.
친구가 자식에게 느꼈을 뜨거운 애정 대신 차가운 이성으로 얘기한 나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친구가 얘기한 경험을 아직 못해 본 내가 어렴풋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나와 같이 생활하는 여섯 살 된 조카가 같은 유치원 아이에게 맞고 들어온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조카를 때린 아이에 대한 미움이 울컥하고 올라온다.
‘내 조카를 때려.. 이런 괘씸한 녀석’
그렇다한들 외삼촌인 나의 속상함이 아이 부모가 느꼈을 그것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친구가 자신의 아이가 넘어 졌을 때 느꼈을 안타까움 역시 내가 헤아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차갑지만 꼭 필요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훈수는 제 삼자의 특권이니 말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어머니인 신현순 여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위로 아들과 딸을 잃고 얻은 귀한 아들이 어린 시절 같은 동네 친구로부터 거의 매일 맞고 들어와 속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단 한번도 ‘너도 같이 때리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절제되고 의연한 처신에서부터 반기문은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반기문을 거의 매일 때렸다는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몇 해 전 해외 휴양지에서 겪었던 일이다. 식사를 위해 줄을 서있던 내가 뒤로 밀리며 뒷사람의 발을 밟게 되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에 뒤들 돌아보게 되었는데, 뒤쪽에서 내게 밟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쏘리(Sorry)'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린 여학생이었다. 싱가폴에서 왔다는 그 소녀를 보면서 같이 동행하고 있던 한국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여행도중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유분방하게 떠들고 행동하는 사이에 같이 동행하는 일행은 피곤함과 짜증을 느껴야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 기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르치지 못한 예절과 배려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싱가폴 소녀와 한국아이의 국제경쟁력은 이것을 통해 상당부분 검증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 기죽이기 싫고 다른 아이들에게 맞고 오는 것이 싫은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아이에겐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애롭게 아이를 돌봐야 하지만 훈육(訓育)의 책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이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만 있고 아픈 가르침이 없으면 그 아이의 미래는 부모와 사회의 기대에 못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내의 실력자 한 사람이 출세를 하게 된 데는 그 어머니의 덕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마오쩌뚱(毛澤東)의 장정(長征)에 함께 했는데, 그때 자신의 아들은 뒷전이고 함께 한 동료 아이들을 먼저 챙겼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그런 어머니를 원망도 했겠지만,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온전히 어머니 덕이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그를 지지해주고 끌어준 것은 어머니가 돌봐주던 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또한, 아이에게 정당한 훈육을 하는 것은 결코 아이의 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훈육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이 땅의 소중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 중에는 제2, 제3의 반기문이 나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엇이 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커서 이끌어갈 사회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서는가에 있다.
정주학(程朱學)을 창시한 이정자(二程子), 정호(程顥)와 정이(程?) 형제를 키워낸 어머니 후씨 부인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식들이 기를 펴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굽히지 못할까를 염려한다.”
/완주군 농업기술센터 장 상 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