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즘은 세계적이다. 국토의 80%가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산과 친하다. 몸이 불편해서 산을 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자연조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땅에서 태어난 탓으로 산을 타야만 한다. 마을 뒷동산이라도 산은 산이다. 학교를 가더라도 산을 넘고 고개를 넘었다. 어려서부터 산을 오르는 습관이 몸에 뱄다. 요새는 교통이 발달하여 아무리 산골짜기에 살아도 학교 가는데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20리고, 30리고 따질 것도 없이 책 보따리 허리춤에 꿰고 걸어야 했다.
먼 길을 다니느라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곯아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때 걸었던 것이 자신도 모르게 하체를 튼튼하게 만들어 지금도 높은 산을 제 집 문턱 넘어가듯 쉽게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담으로 30리를 걸어 다닌 일을 자랑한다. 이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국토에서 태어나 높은 산에 올라 시 한 수 읊지 못하면 선비 측에도 끼지 못한다. 옛날 선비들이 남긴 작품을 보면 유난히도 산과 강을 노래한 게 많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해서 현자는 물을 가까이 하고 인자는 산을 즐긴다는 말도 있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등산인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외국을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흔히 한국은 복 받은 나라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인구가 몰려 사는 수도 한복판에 산이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말한다. 미국, 일본, 중국 어디를 가도 수도 근처에서 산을 찾기란 쉽지 않다. 두 시간, 세 시간 쯤 차를 타고 달리면 산을 만날 수 있지만 주말 등산을 즐기는 것은 어림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르다.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국립공원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 그리고 남산, 안산, 인왕산, 아차산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높고 낮은 산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우뚝 서있다. 요즘 단풍철엔 유난히 등산객이 많이 몰려 장관이다. 전철과 버스로 너무나 쉽게 산에 닿을 수 있으니 복 받은 나라임이 분명하다.
산을 좋아하는 저변인구가 많다는 것은 우수한 등산가를 배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일본 야구가 강한 것은 고교 팀이 한국의 수십 배 많은데서 찾을 수 있듯이 등산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우수한 산악인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조성은 국력과도 맞먹는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하면서 한국 산악인의 히말라야 도전은 붐을 이룬다. 자체 경비조달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업들의 후원이 줄을 잇는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산악인들이 양산되었다.
히말라야는 산악인들의 꿈이다. 8천 미터 급 고산이 14개나 된다.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면서도 가장 높다는 백두산이 3천 미터도 못 된다. 3천 미터 급 산 14좌를 모두 오르는 것은 세계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어렵고 위험하다. 여기에 도전하여 성공한 사람은 지금까지 20명도 못된다. 그중에 한국인이 다섯 명이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룡에 이어 여성 최초의 등산가까지 한국은 해냈다.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박영석은 히말라야 8천 미터 급 14좌,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북극과 남극 그리고 에베레스트라는 3극점(三極点)을 모두 올라 이른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투지의 산악인이다. 그가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되었다.
전 세계 산악계는 물론이요, 한국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모두 안타까워한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남벽을 등정하기 위해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베이스캠프를 떠난 박영석 대장은 10월 18일 오후 4시경 “기상사태가 나빠 하산 한다”는 교신을 끝낸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해발 5800미터 지점이다. 벌써 닷새가 넘었다. 5일간의 비상식량이 있다고 하지만 히말라야의 기상과 기온은 전 국민을 걱정하게 만든다. 산악연맹과 후원사 등이 앞장서 그를 구조하려고 백방노력하고 있다. 얼음이 갈라진 크레바스에 빠진 것 같다는 조심스런 견해도 있다. 아무튼 그의 실종은 일시적 조난 대피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산을 좋아하는 모든 등산인의 염원을 대신하여 그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박영석 대장, 반드시 살아서 귀환하시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