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게
농게
  • 김규원
  • 승인 2024.08.2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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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백금종/수필가
백금종/수필가

줄포만 갯벌을 향해 길을 걸었다. 마치 행군하는 병사들과 흡사하다. 옆구리에 총 대신 어망을 둘러맸다. 어망 없는 이는 작은 양동이를 들기도 했다. 행색은 조금 남루하나, 얼굴에는 결기가 흘렀다.

바닷가에 닿자마자 무작정 갯벌로 뛰어들었다. 사방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농게들이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 농게를 잡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농게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구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갯벌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내내 이어졌다.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다. 잡히는 농게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그러니 농게들이 줄행랑을 치는 것은 당연한 일. 생명 보존의 본능이다. 그런 농게를 함부로 잡으러 간 우리가 무법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세파에 쫓기고 세대에 밀리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는 내 모습 같았다.

갯벌에는 송곳으로 찍어놓은 듯 예리한 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모두 농게가 그려놓고 달아난 자국들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특히 김환기 화백의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우주, 라는 그림과 비슷했다.

김 화백도 갯벌이 아스라이 펼쳐있고 바닷물이 출렁이는 신안의 어느 바다마을 태생인데 농게 발자국이 모티브가 되었는지, 아니면 밤하늘 헤아릴 수 없이 떠 있는 은하수를 형상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앞으로 나아가니 무릎까지 빠진다. 빠진 한쪽 발을 빼내려 하니 이번에는 반대편 발이 더 들어간다. 한 발자국 나아가는 데도 힘이 든다. 갯벌은 블랙홀이다. 농게를 잡기는커녕 내가 갯벌에 빨려들 상황이다.

몸 하나 지탱하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이는 비단 농게 잡이 뿐 아니고 세상일도 그러하리라. 뭐라도 하나 시도해 보려면 이런저런 일들이 가로막고 막상 다 되었다고 한 시름 놓을 때도 예기치 않았던 일이 터져 그릇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서이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리라.

둘러보니 갯벌은 구멍 천지다. 화들짝 놀란 농게들이 숨죽이고 있을 터이다. 쪼그리고 앉아 농게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렸다. 구멍 속에서 뽀락뽀락소리는 들리는데 정작 농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야를 좁혀 농게가 들어간 구멍에 집중하였다. 드디어 구멍에서 작은 물체가 볼록 솟아올랐다. 농게잡이에 경험 많은 분이 그게 바로 농게의 눈이라는 것이다. 눈을 삐끔 내놓고 360도를 회전하면서 주위를 살핀다는 것이다.

나는 겨우 150도 정도의 시야만 확보하는데 농게는 사방을 한꺼번에 둘러보면서 경계한다니 농게와의 전쟁에서 내가 필패할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손자병법의 모공(謨攻) 편이 생각났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

농게의 360도 회전이 가능한 겹눈구조를 모방해 전방위수륙양용 광각카메라를 개발한 연구자가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몇 년 전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미물인 생명체의 신체 구조에서 힌트를 얻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경우가 아닌가?

농게 중 수컷은 집 주위에 커다란 성을 쌓고. 암컷을 유혹한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의 튼튼한 집게와 크고 화려한 집을 보고 그의 집으로 찾아 든다고 한다. 암컷을 유인하기 위한 수컷의 최대의 퍼포먼스이다. 그러고 보니 갯벌의 최대 사랑꾼은 수컷 농게가 아닌가 한다. 농게의 세계도 내실보다도 외모에 열광하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게는 신체 복원력도 탁월하다고 한다. 만약 커다란 집게발이 떨어져 나가면 다른 쪽의 작은 집게발이 성장하여 큰 집게발이 되고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작은 집게발이 자라나 먹이를 채취하는 구실을 한다고 하니 어쩌면 인간보다 더 우수한 재생력이 있지 싶다.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야 잠시 펄을 벗어났다. 호요바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햇빛에 노출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짭조름한 추억을 얼굴에 새긴 듯하다. 잠시 허리도 펼 겸 도시락을 폈다. 일행과 더불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모습도 오랜만에 경험하는 정겨운 장면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춘다는 속담처럼 한숨에 먹어치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린 시절 먹던 농게 젖이 없는 것이다. 어머니는 농사가 끝자락에 이르면 잡아 온 농게를 돌확에 넣고 나무 절구로 찧어 농게 젖을 만들었다.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함께 농게 젖을 듬뿍 넣고 쓱쓱 비비면 밥 한 그릇은 금세 뚝딱이었다. 잘 숙성된 농게 젖 속에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물새 울음소리는 물론 갯벌 생명체 숨소리까지 모두 들어있었던 듯싶었다. 농게는 몸은 해체되었지만, 자연의 오묘한 진리까지 품고 있었다. 나도 언제쯤 허물을 벗고 진실한 자아로 거듭날까?

오늘 갯벌 위에서 결투는 무승부다. 아니 승부를 가리기 전에 농게를 통해 배운 것이 너무 많다. 작은 풀꽃 하나에도 우주의 진리가 들어있듯 농게에게도 여러 가지 진리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갯벌에서 얻은 결실이 아닌가? 더불어 세상에 만만한 일은 어느 하나 없다는 것도, 하찮은 미물이라도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펄 흙으로 얼룩진 일행의 얼굴 위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타오르듯 붉은 저녁놀이 서녘 바다를 곱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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