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김규원
  • 승인 2024.08.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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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75

 

 

 

 

 

 

박완서 소설 미망을 읽는다

개성 사람들이 가난으로 독립운동한 이야기다

 

5전 들고 비누심부름 간 아이가 신장개업한 일본인에게서 덤까지 두 개를 가져오자 그 어미가 조선인 가게에서 하나만 사오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다 이상한 셈법에 헛갈렸지만 그게 틀린 산수가 아니라는 걸 고향을 잃고 나서야 알았으니

 

개성에 일본상점이 발을 붙이지 못한지 겨우 백년 이 땅엔 또다시 조선인들이 차린 일본상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니 수학을 잘해 간신공부도 잘했겠으나 정작 사람공부는 좀

 

독립문거리에서 일제차를 만나면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하리라 깃발을 들자 비웃음이 실린 동남풍이 불어와 그 깃대를 꺾는다, 외제차 살 돈은 있고?

 

졸시개성상인전문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문이 막힐 때마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어처구니없다와 함께 쓰여,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힘을 이르는 말이다. ‘어처구니의 어원에 대해서는 맷돌의 손잡이라는 설도 있고, 중요한 물건의 받침이나 지지대를 뜻하기도 하며, 궁궐 지붕의 추녀 끝에 흙으로 만든 토우土偶를 뜻한다는 등 그 설이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말의 쓰임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에는 대체로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어이없다는 뜻이다. “어찌할 도리나 방법이 없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어처구니없다!’고 탄식한다.

 

둘째는 뜬금없다는 뜻이다. “갑작스럽게 엉뚱한 일이나 뜬금없는 상황일 때역시 어처구니없다!’고 한탄한다. 셋째는 시치미 떼다는 뜻으로도 활용된다. 일을 벌인 당사자가 전혀 모르는 일인 양 딴청을 피우는 모양을 보았을 때 또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어처구니없다!’고 자탄한다. 그러고 보면 고유어인 이 말이 속 터지는 우리의 속내를 달래어준 말이기도 하다.

 

요즈음 이 어처구니없는일들을 매우 자주 겪고 있다. 뉴스를 보기가 두렵고, 소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는 사람들의 언급을 듣기가 민망하며, 나아가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잠자리가 불편하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사람일까 마는, 참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시대의 반역에 맞설 수 있는 자주적 의지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절이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총칼로 이웃나라를 점령하고 우리 민족을 저들의 식민지 노예로 부려먹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겨레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니, 제정신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할 말이 아니다.

 

황국신민이란 딱지는 저들이 우리 가슴에 형벌처럼 새겨놓은 저주스러운 화인火印이 아니었던가! 그 아픈 상흔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의식은 어처구니없음을 넘어 패륜적 민족 반역자나 할 수 있는 망발이다.

 

강원도 도지사는 상해임시정부는 국가의 삼요소를 갖추지 못했음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 볼 수 없다고 강변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과 영토를 잃었으니, 남의 나라를 빌려서라도 그 주권을 행사하고, 잃은 국토를 되찾으려 투쟁하기 위해 세운 엄연한 ‘(임시)정부가 아닌가! 이런 끊길 수 없는 국권 회복의 정기를 높이 사서 헌법 전문에 그 정신을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주권을 잃었다고, 영토를 빼앗겼다고, 두 손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억지 주장이다. 겨레의 가슴에 황국신민의 불도장을 찍었다고 해서 한겨레가 왜놈이 되지는 않는 것! 침략자들의 총칼이 삼천리강토를 짓밟아도 이 땅이 일본 섬나라가 되는 것은 아닌 것! 잃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한 조상들의 넋을 더럽히는 자가 도지사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國父라고 강요한다. 이승만이 벌였다는 독립운동의 진위 여부에 관한 여러 이설이 있지만,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는 ‘4.19민주혁명에 의해서 쫓겨난 독재자가 아닌가! 그가 대한민국을 건립한 국부라면, 앞에서 인용한 헌법 전문에 나온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은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불의에 항거하느라 목숨을 잃은 4,19민주혁명 열사들의 희생은 무엇이 되겠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며, ‘식민지시혜론’을 펴는, 소위 학자도 있다. 이런 자들의 본심은 내 입에 쌀밥과 고깃국만 들어오면, 도척盜跖 같은 날강도건, 히틀러 같은 악당이건, 야쿠자 같은 무뢰한이건, 가리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고도 남을 자들이다. 간도 쓸개도 없는 자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몰염치한 시대, 어처구니없음을 넘어 피가 거꾸로 솟는 참담함이 아닐 수 없다.

 

박완서의 소설『미망』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5전 들고 비누 심부름 간 아이가 신장개업한 일본인에게서 덤까지 두 개를 가져오자 그 어미가 아이를 돌려보내 조선인 가게에서 하나만 사오게 한다. 어린 아이 눈으로 보면 이상한 셈법이겠지만, 당대 식민지 노예상태였던 우리는 비록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저항정신이 체질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성에는 일본상인들이 발을 못 붙였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그것은 개성의 기질 ‘저항정신’이었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역사의식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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