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騷音을 덮는 소음消音”
“소음騷音을 덮는 소음消音”
  • 김규원
  • 승인 2024.08.1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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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74

 

 

 

여름이 젖은 치맛자락을 접을까말까 망설이는 날

매미들 떼창소리가 얼마나 종이지면을 먹칠하던지

검은까마귀놈이 그런다

흰까마귀년에게 작업을 걸려는데 씨알도 안 먹히니

대나무숲에 숨어 엿듣던 참새녀석이 투덜거린다

그래도 넌 공갈대포라도 쏠 수 있지

, 댓글소총을 아무리 쏘아대도 종이귓구멍이 막혔는지

갈바람이 저 건너에서 손나팔을 부는데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도 옛말,

이제는

七年蟬二週聲*이라며 서늘한 기별을 보낸다

 

*칠년선이주성: 매미는 애벌레로 흙속에서 살다 7년 만에 지상에 나와 겨우 2주 운다.

 

졸시소음전문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당대는 항상 시끄럽다. 고대 그리스에서 출토된 명문銘文 비석의 내용을 금석학 연구자들이 조사해 보니, “요즈음 젊은이들이 올바른 시국관을 지니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2천 년 전에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걱정꺼리였던 모양이다. 하긴 젊은이들이 애늙은이가 되어 기성세대의 품에 안주한다면, 그를 젊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그럴까, 아니면 시대가 그만큼 안정되어서 그럴까, 그것도 아니라면 개인주의가 득세해서 그럴까? 요즈음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자주 들리지 않는다. 사회적 이슈, 정치적 모순, 계층적 문제 등이 불거지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게 바로 대학의 대자보였다. 개인이나 동아리 이름으로 올린 대자보의 호응이 커지면 대중 운동의 동력이 되기도 했던 사례도 적지 않다. 젊음의 상징인 대학생들이 양심과 정의감에서 토로하는 주장들이 기성세대의 간담을 서늘케 한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대학에 대자보가 사라졌는지, 아니면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정견을 앞세운 비판보다는 정파적 편 가르기에 편승하기도 하고, 그런 세력에 참여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을 실감케 한다.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그렇게 대응하게 된 까닭을 사회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생들 대다수가 소위 금수저출신들이라는 것,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학생들일수록 명문대학 입학률이 높다는 것, 사회운동 이력이 졸업 후 사회진출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것 등을 이유로 본다. 그러니 이들이 뭐가 아쉬워 사회운동에 참여하겠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요즈음 젊은 대학생들은 대의명분에 입각한 정의감의 실현보다는 개인의 출세 지향적 성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 분위기나 정치 풍토 또한 그렇게 변형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젊음이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답 없는 질문을 하게 된다.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순응하여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는 젊은이들이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맞서 양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어떤 선택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전자처럼 누림으로써 받은 혜택보다는 후자의 희생과 헌신에 더 많이 의지하여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며칠 전(‘24.08.09) <2024 대학생 통일대행진단>이라는 대학생 단체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 가로막는 주한미국 철수하라!”, 경기도 평택경찰서 앞에서 주한미군 규탄한 애국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했다.(오마이뉴스 보도) 이 보도를 접하며 모처럼 왕성하게 분출하는 젊음의 혈기와 용기를 실감했다. 그러면서 당대의 젊은이는 항상 걱정꺼리라는 기성세대의 염려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기를 염원하였다.

 

이 작은 목소리에 비해 언론을 빙자한 대규모 매체들은 겨레의 평화보다는 정치권력이 주장하는 평화에 반하는 목소리 투성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반 자주적이며 외세에 의존하려는 발상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소수의 젊은이들이 내는 목소리가 모처럼 기성세대들이 대형스피커로 내지르는 몰염치에 대한 저항으로 보여서 반갑다.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자 매미들이 극성을 부리며 울어댄다. 여느 해보다 매미들의 개체수가 월등히 많으며 그 소리 또한 더욱 요란하다. 이 소음으로 인하여 다른 생명체들이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 매미들의 소란스러운 소음 때문에 미세한 파동으로 먹이사냥을 하거나, 짝짓기 대상에게 전달해야 할 신호가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저들의 생존을 위한 소음이겠지만, 생태계에 주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다.

 

소음騷飮은 소음消音으로 막아야 한다. 겨레의 안전보다 정치권력의 안전을 도모하는 소리, 인류의 평화보다 전쟁을 부추기는 소리, 젊은이가 외치는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를 감옥에 가두라고 주장하는 소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주장에 색깔론을 입혀 흠집을 내려는 소리는 모두 소음騷音일 뿐이다.

 

생명체들의 온전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소음騷音은 소음消音으로 덮어야 한다. 그 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젊은이들이 외치는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를 어른답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7년이나 땅속에서 지내던 매미라 할지라도 지상의 삶 겨우 2주일이면 다시 알로, 애벌레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유한한 한줌 권력으로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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