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는 꼭 모이자
수요일에는 꼭 모이자
  • 전주일보
  • 승인 2012.01.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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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쉽지 매주 하루를 지정하여 꼭 만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요즘은 토요일도 쉬는 날이어서 5일 밖에 일 안하는 풍토로 정립되었는데 그 중의 하루를 할애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1년은 대개 50주 전후(前後)가 되어 수요집회 20년을 기록하다보니까 어느덧 1000회를 넘어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20년을 하루같이 꼬박꼬박 한 자리에 나와 섰던 할머니들은 처음 시작하던 1992년 1월8일에는 234명이던 것이 20년 사이에 171명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금 남아있는 분이 63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누구인가?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의 하나였던 군국주의 일본은 전쟁수행의 도구로 동원된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그들의 지배력 하에 있는 나라의 여성들을 강제 동원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여성들을 희생시킨 나라는 식민지였던 조선이다. 조선 외에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여러 나라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성 상대 노예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욕과 수치감을 느껴야 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임신이 불가능해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처음 동원할 때에는 종군위안부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군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고 유혹했다. 철저하게 가난한 현실이 이에 현혹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끌어갔다. 많은 가정에서는 정신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열 살만 되어도 어린 여자아이를 결혼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행적은 광복과 함께 철저히 묻혔다.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일본정부가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도 일본정부는 자진해서 한 일이라고 강변하며 민간차원의 행위로 미루고 있다.

더구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대일청구권 자금 속에 모두 편입되어 모든 보상이 완료되었다는 입장이다. 이를 맨 처음 폭로한 사람은 김학순 할머니다. 1991년 8월 기자회견을 통하여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일장기를 보거나 정신대의 ‘정’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라고 감췄던 사연을 모두 털어놨다. 그는 꽃다운 17세에 끌려가 하루에 4~5명의 짐승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그의 용기에 힘입어 애써 감췄던 과거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많은 할머니들이 용감하게 자신을 드러냈다. 여성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이들을 따뜻하게 감쌌다. 회고하기도 싫은 과거사였지만 사회에서는 전 국민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집단으로 거주할 수 있는 보금자리도 마련되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거처에서 수요일마다 출동하기 위한 미니버스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차는 언제 고장이 날지 조마조마해졌다. 낡을 대로 낡은 것이다. 이 보도에 독지가가 나타나 새 차로 선뜻 바꿔줬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마음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2011년 12월 14일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순간을 맞이했다. 일본을 향한 할머니들의 절규가 어느덧 1000회째다. 만20년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171명의 할머니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지만 1000회를 맞이한 수요집회는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수백의 외신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뜨거운 취재열기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괜히 흥분한다. 미국에서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면하고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이벤트도 연출되었다. 이미 80이 넘은 할머니들이지만 일본과 독일의 만행 희생자들이다.

동병상련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그들의 만남은 세계적 뉴스가 되었다. 오직 일본정부만이 눈을 감고 있다.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잘못을 사과하고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정신대가 일본군대가 관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출입증까지 제시하고 있어도 일본은 막무가내다. 몰랐다는 것이다. 참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현장에는 평화비가 세워졌다. 끌려가기 전 소녀의 모습이다. 어린 소녀를 유린한 일본정부는 평화비에 가슴이 아픈 것일까. 방일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철거를 요청했다.

대통령은 작심하고 사과와 보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문제는 이제 한일외교 차원을 떠나 양심적인 전 세계인과 일본의 지식인까지도 가세하고 있다. 고베 대지진이 났을 때 할머니들은 조문의 뜻으로 한번 집회를 거뒀다. 올해 동일본에 미증유의 해일이 밀려닥쳤을 때에는 침묵으로 끝냈다. 성금까지 모아 보냈다. 이렇게 착한 마음의 할머니들의 여생은 길지 않다. 일본정부는 할머니들의 자연수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사과를 아끼고 보상금 절약을 시도하겠는가. 할머니들의 문제는 청구권 자금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깨닫고 사과와 보상부터 시행해야만 일본의 체면이 선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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