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유행어가 새롭게 창출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재주는 한국 사람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새로운 조어(造語)가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자고나면 새 낱말이 쏟아져 나온다.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른바 네티즌 사이에서는 약자와 조어를 뒤섞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안 되는 글자를 만들어 세상에 선을 보인다. 언어의 기본조차 무시한 이런 일들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벌어져 식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과학성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이러한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인터넷의 익명성과 치기어린 청소년들의 장난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무 의식도 없이 자기네끼리만 알 수 있는 문자를 주고받는다.
상대가 몰라봐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정확한 전달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한글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경지에 이른다. 국민의 정서에 맞는 언어구사에 큰 책임이 있는 방송국조차 여기에 부응하여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는 가수다’를 줄여 나가수로 통한다. 직업가수나 지망가수를 모두 합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심사를 통하여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 프로다. 이 프로의 인기는 한 때 대단했다. 처음에는 케이블 방송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를 지상파에서 이어받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가수 출신이라고 해도 통할 만큼 지명도가 높아진 셈이다. 나가수 프로에서 일단 인정받으면 스타덤에 오른다. 오랜 세월 가수가 되려고 각고의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그들이 뿜어내는 생생한 열기가 시청자의 가슴을 친다.
아무튼 스스로 나는 가수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기백 그리고 정열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나 꼼수다. ‘나는 꼼수다’의 준말인데 스스로 자기를 꼼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행동이나 언어에 대하여 자책하는 수가 많다. “내가 죄인이다” “나는 바보야” “내가 죽일 놈이다” 등등 자신을 학대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회한(悔恨)과 처절한 반성을 할 때 그런 말을 흔히 쓴다.
이런 한국적 정서 때문에 미국에서 살인범으로 오인되어 오랫동안 감옥을 산 억울한 일도 생겼다. 자살한 사람을 부둥켜안고 자탄하는 말 중에 ‘나 죄인’이라는 말을 경찰이 엿듣고 가해자로 체포한 것이다.
아마도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자탄(自歎)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꼼수라는 말을 의젓하게 해도 아무런 흉이 되지 않는 걸보면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얼른 판단이 안 선다. 오히려 나 꼼수는 날이 갈수록 기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동영상 방송으로 나가는 나 꼼수의 진행자인 전 국회의원은 법을 위반하여 1,2심 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그가 나 꼼수의 열렬한 팬들을 끌고 대법원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하라고 시위를 한 것은 참으로 적반하장이다.
꼼수라는 말은 약간 천한 표현이어서 점잖은 사람들은 자주 쓰지 않는 말 중의 하나다. 꼼수는 남을 속인다는 말이다. 진짜가 아닌 가짜를 꼼수라고 해도 되고, 정말이 아닌 거짓말을 꼼수라고 해도 된다.
꼼수는 한마디로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언어를 가리킨다. 남이 나를 가리켜 꼼수라고 부른다면 이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는 중대한 인격모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꼼수는 떴다.
촛불시위 이후 괴담(怪談)을 지어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는 작태다. 스스로 꼼수를 자처하는데 박수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득시글거리면 나라의 장래가 밝다고 해야 되나, 어둡다고 해야 되나?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살이의 한 단면이겠지만 이제는 좀 긍정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조타수(操舵手)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나는 천재다”라고 자처하는 인물등장을 원하고 바란다.
삼성회장 이건희는 ‘한 사람의 천재’를 간절히 바랐다. 아버지가 일군 삼성을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운 이건희는 천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인 듯하다.
그의 동료들은 알게 모르게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남보다 한 발 앞선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천재다. 기업은 그래야만 성공한다.
필자의 주위에는 김광식(金光植)이 눈에 띈다. 그는 강원도 산골에서 겨우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다. 그가 민주화운동을 하기 위해서 민추협에 뛰어든 이후 중국으로 건너간다. 중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중국 가서 뭘 했을까.
중국은 골동품과 미술품이 넘치는 나라다. 그는 뛰어난 안목으로 진품을 가려낸다. 스스로 천재라고 말은 않지만 제주도에 세계유수의 대학을 유치하려고 계획하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가등청정이 버리고 도망간 칼을 찾아내 일본의 수치심을 이끌어낸 것도 볼만하다. 나 천재는 곳곳에서 나올 수 있다. 이를 발굴하고 그 뜻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나 둔재’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