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혁명 뺀 역사교과서로 뭘 배우라고
민주혁명 뺀 역사교과서로 뭘 배우라고
  • 전주일보
  • 승인 2011.11.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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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의 원래 이름은 문교부다. 문교부를 풀어쓰면 문자 또는 문학을 가르치는 정부부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본다.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담당 부처이기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도 그들이 담당한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더 추가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부를 흡수하여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약자로 교과부라고 부른다. 과거 문교부보다 무슨 일을 하는 부처인지 얼른 알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양적으로 커진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중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인증하는 일이다.

엊그제 대학입학 수능시험처럼 전국이 떠들썩하게 관심을 갖는 일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가 교과서 편찬이다. 교과서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좌우한다. 어떤 교과서로 공부하느냐 하는 것은 학생의 인격까지 결정짓는다. 그래서 나라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알맞은 교과서를 채택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모든 교과서를 직접 편찬했지만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성을 내세워 학자들이 자유롭게 교과서를 펴내고 있는 실정이다.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어서 전문지식을 다 쏟아내어 교과서를 집필하게 된다. 같은 과목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들이 집필하여 어느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지 학교의 재량에 맡기게 된다. 이 경우 교과부는 집필기준을 제시할 뿐 내용에 간섭하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다만 집필기준은 교과서를 쓰는 학자나 출판업자들에게도 큰 압박이 된다. 교과서는 학교에 의해서 채택되었을 때 빛을 발한다. 어떤 학자가 썼느냐 여하에 따라서 많은 학교가 채택여부를 결정한다. 요즘 말썽을 일으킨 사건 중의 하나가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느냐 단순히 ‘민주주의’라고만 쓸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민주주의면 됐지 거기에 무슨 다른 수식어를 붙일 것이냐 하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아래 놓여 있다. 사상과 이념이 다른 체제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전상태에 있고 휴전선의 분쟁도 끊임이 없는데다가 북한의 공식명칭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어서 그 쪽도 민주주의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

이것 때문에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학자들은 우리 역사교과서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민주주의'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 보수학자들은 북한의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 또는 노동민주주의라고 해야 옳지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함께 사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교과부에서는 이를 절충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써도 무방하다고 결정했다. 정확한 용어를 지정하지 못하고 양쪽의 의견을 버무린 느낌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들은 엉뚱하게도 정부수립 이후 한국의 역사에 신기원을 이뤘던 민주혁명의 역사를 저버리는 집필기준을 제시하여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 나라에는 몇 건의 커다란 역사적 거사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역사는 4.19혁명이다. 자유 민주 정의로 대변되는 4.19혁명정신은 3.1만세운동 정신과 함께 이 나라의 건국이념으로 ‘헌법전문’에 대문짝만하게 밝혀있다. 나라를 지탱하는 헌법정신으로 인정되고 승화한 것이다.

헌법을 파괴하지 않는 한 이 정신을 묻어버릴 수는 없다. 4.19혁명은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와 부패를 타도한 학생혁명이다. 186명이 경찰의 총탄에 희생되었으며 6500여명이 부상한 엄청난 사건이다. 이로 인하여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이는 선거에 의해서 집권자가 바뀌는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문자 그대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일이다. 이 문제는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무겁고 크게 다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에서는 집필기준에서 이를 송두리째 삭제했다. 도대체 역사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군사쿠데타 세력처럼 민주혁명이나 학생혁명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진 자들이 집필기준을 정해서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미 ‘역사의 빛’으로 정해진 4.19혁명은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에 곁들여 5.18민주항쟁과 6월 항쟁도 모두 삭제하기로 했다고 한다.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렵다. 어처구니가 없다. 5.18민주항쟁은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그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국가의 잘못에 대한 물질적 보상과 공로자에 대한 사후 묘소까지 국립묘지로 조성해 놨다.

6월10일 민주항쟁 역시 국가기념일로 정하여 직선제 개헌안을 쟁취한 빛나는 공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누가 부인해서도 안 되고 뭉개질 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과부에서 무슨 심사로 이런 반역사적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진상을 밝히고 잘못된 집필기준은 폐기되어야 한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민주혁명의 정신을 제외하고 뭘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이대로 방치하면 독립운동의 역사도 삭제하자고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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