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를 지킨 서울여상
실업계를 지킨 서울여상
  • 전주일보
  • 승인 2011.10.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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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연면한 역사를 자랑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교육은 그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자기의 적성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고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경륜을 갖추게 된다.

옛날의 교육은 주로 무술단련에 있었다.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술을 단련하여 강인한 육체를 갖는 것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의 체계가 잡히고 종교와 문화의 발달 양상이 중요시되면서 인문(人文)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되었다.

더구나 소통의 필요성 때문에 문자가 발달하고 미술 등도 비약적인 발달을 이뤘다. 또 생활을 위한 생산과 소비 문제가 피부에 와 닿게 된다.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가의 힘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국가발전의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점진적으로 기초가 굳건해진다. 그 중에서도 교육에 관해서는 상하 없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학교교육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서당(書堂)제도도 이 때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의 수준도 어린 아동을 가르치는 초등교육부터 시작하여 중등교육으로 올라간다. 대부분의 교육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중등교육 정도만 받더라도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중등교육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지리, 수학, 언어, 음악, 미술, 체육 등 상당한 지식을 습득한다. 이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학교육을 받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백성들이 지나치게 높은 교육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일제 총독부는 조선학생의 대학진학을 아주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 반발의 여파로 광복 후에 우리 정부는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를 풀어주게 된다.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었던 억압심리를 누구에게나 개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육에 굶주려있던 국민들은 앞 다퉈 학교를 택하였다. 초등교육은 물론 우후죽순으로 중등교육기관이 세워졌고 대학교는 6.25 전쟁의 와중에 ‘재학생의 입대연기’혜택에 힘입어 입학생이 급증했다.

조그마한 건물만 있어도 대학설립이 허가되었으니 시골에서 학비를 대기 위해서 소 팔고 논 팔아 등록금을 올려 보내 일컬어 우골탑으로 불리게 된다.

지금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 중에도 당시 판자집 출신이 여럿이다. 인구가 불어나는 통에 경제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철저한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심지어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한 사람은 일정 기간 훈련을 면제하는 특혜까지 줘가며 가족계획을 실시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세계 제일의 출산기근 국가로 전락되어 오히려 산아장려에 매달린다. 그래도 폭주한 인구는 5000만을 넘어섰다. 이 많은 인구들이 이제는 하나나, 둘 밖에 없는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능하면 유학도 보낸다. 특별한 비전도 없으면서 최고학부를 나와야 하고 막대한 외화를 써가며 외국유학을 해야 그나마 체면을 세운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전국 곳곳이 대학 천지다. 옛날에는 거리마다 다방이 넘쳐나더니 요즘에는 교회로 그득 차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를 패러디하면 이제는 대학이 넘친다. 지난여름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처럼 대학이 휩쓸고 있으니 생전 처음 듣는 대학 이름도 수두룩하다.

이런 대학을 나와서 어쩌자는 것인가. 일류대학과 삼류대학의 학력(學力) 격차는 너무나 크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부터 강남학군에서 다녀야 하고 이름난 학원에서 공부해야 된다는 공식이 정설처럼 굳어있다. 결국 SKY 등 유명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밤잠을 설치며 공부에 열중한다.

이 와중에 실업계 고교는 어느덧 입시와는 멀리 떨어진 학교로 인식되었다. 과거에는 상고, 공고, 농고 등이 인문계 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역사회의 일꾼을 길러냈다.

그런데 이제는 실업계를 자처하는 학교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는 그대로 있지만 대부분 교명(校名)을 바꿨다. 그것도 모두 인문계로 바꿨다. 부산상고는 야당총재와 대통령까지 배출한 학교면서도 인문계가 되었다.

목포상고도 마찬가지다. 이들 전통 상고 중에서 유독 아직까지 초심을 유지하면서 교명을 떨치는 학교가 있다. 그 공로를 높이 사 제25회 인촌상(仁村賞) 교육부문을 수상했다. 서울여상이다. 여성취업이 가장 어려울 때부터 서울여상은 직업교육에 일심으로 매달렸다.

1926년에 개교했으니 85년을 한결같이 한길을 판 것이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실용주의를 선택한 교육관은 여성교육의 산 모범으로 인정받는다. 1억원의 상금도 적지 않지만 지난해 졸업생 98.3%가 취업에 성공하고 시중은행 여성지점장 3명중 1명이 이 학교 출신이라니 놀랍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자리를 지키는 그 끈기로 꼭 필요하지도 않은 대학에 목을 매는 풍조를 일신시켜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금융 및 국제통상 e비지네스 분야로 특성화한 서울여상 식의 응전이 성공하여 실업계 고교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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