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있을 때마다 후보자는 난립한다. 대부분의 선거는 정당의 공천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메이저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당선의 지름길이 된다. 그러나 뜻을 세운 모든 사람들이 너도나도 공천을 신청하는 통에 공천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로 불린다. 막상 공천을 받았더라도 상대정당의 후보로 강자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해선 공천권을 쥐고있는 당의 최고 실력자의 인정을 먼저 받아야 한다.
천하의 공당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공천심사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당 대표다. 특히 지역적 편 가름이 너무나 확실한 우리나라는 지역색이 가장 강한 대표가 공천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우리는 3김 시대라는 말을 흔연히 써왔다. 영남의 김영삼, 호남의 김대중, 충청도의 김종필 세 사람이다.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은 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특히 그들이 대표한다는 지역에서는 공천=당선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공천을 거머쥐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선과 직결되는 공천이기에 과거의 인연을 내세워 애소하기도 하고, 3김과 가까운 비서를 찾아가 부탁을 하기도 한다. 모든 인연으로 볼 때 낙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많은 이들이 오직 지도자의 부름만 기다린다. 3김이 어려울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식은 밥, 더운 밥을 가리지 않았던 많은 동지들이 그것만을 믿고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최종통고는 끝내 오지 않는다. 비정한 정치의 세계다. 감옥살이까지 동행하며 민주화운동에 몸 바쳤던 수많은 젊은 일꾼들이 배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좌절하는 순간이다.
3김의 공천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정치헌금과 직결되었다. 당과 개인에게 공공연하게 돈이 건너갔다. 명색은 정치자금이지만 실제로는 공천헌금이다. 헌금이 아니라 공천을 미끼로 뇌물이 헌상된 것이다. 돈을 받고 공천을 팔고 샀으니 낙천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지지자들을 버스로 싣고 와 안방까지 쳐들어온다. 살림을 부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분풀이일 뿐 공천이 뒤집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돈으로 공천을 획득한 자들이 당선했다고 치자. 그들은 뇌물을 준만큼 더 챙기는데 혈안이 된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비리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다 내막이 따로 있다. 임기 내에 준 것을 벌충하고 차기 선거자금까지 준비하기 위해서 무리한 부정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공천헌금의 악순환이다. 게다가 후보로 등록한 다음에는 상대방을 매수하여 사퇴시키는 것도 선거 양상의 하나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후보들이 여러 사람 나오면 유권자의 표가 분산될 것을 염려하여 이른바 한 사람으로 ‘단일화’를 시도한다. 이미 기탁금까지 내고 출마한 사람을 중도에 사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일화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사퇴하는 사람은 대개 남은 이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다. 일정부분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 후보였기 때문에 유권자의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래서 단일화의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이념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이번에 파동을 몰고 온 서울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뇌물수수 사건은 정치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교육감이라는 자리는 관내 초 중고등학교를 관장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다.
서울교육감은 예산만도 8조를 주무른다. 교사들의 인사권과 학교설립, 시설개선 등 모든 사업을 한 손에 쥐고 있다. 교육감 선거를 직선제로 만든 연유를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른다. 아무튼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였으니 직선제가 되었을 것이지만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정당 공천도 없는 무소속으로만 후보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후보의 행적과 공약에 의해서 여야가 갈라진다. 보수와 진보라는 색깔도 분명히 나왔다. 많은 후보가 등록했다. 보수 측 인사도, 진보 측 인사도 여럿이다.
보수 측은 느슨했고 일부 인사가 사퇴했지만 단일화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진보 측은 단일화를 이뤘다. 교육위원을 여러 차례 역임하며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였던 박명기가 최종적으로 후보를 사퇴하고 곽노현의 손을 들어줬다. 곽노현은 당선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그의 지지층은 기고만장했다. “부정과 싸운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큰 소리쳤다. 곽노현은 취임과 함께 철저히 이념실현에 발분망식했다. 무상급식을 내세워 보수세력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
학생의 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육감이 “무상급식도 교육”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전개하며 정치싸움으로 몰아갔다. 급기야 주민투표로 이어졌지만 곽노현의 승리로 끝나 또 한번의 영광을 이룬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선거 때 박명기에게 돈을 주고 후보를 사퇴시킨 게 드러났다. 가장 비교육적 부정비리가 밝혀졌다. 사법처리는 시간문제다. 선한 얼굴만 보이던 그의 진면목은 악의 상징처럼 변했다. 교육감 자리를 돈으로 사고팔다니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볼 수 있을까. 이는 진보진영 전체의 부정비리다. 즉각 사퇴하고 석고대죄하라.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전 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