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單純), 명료(明瞭)
단순(單純), 명료(明瞭)
  • 전주일보
  • 승인 2011.05.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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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해도 될 것을 복잡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구변이야 어떻든 복잡하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머리가 아프다.

전에는 왕에게 상주하는 글이 길었다. 대개는 박식을 자랑하기 위해 장황하게 경서나 사서를 인용하는 일이 많고 거기다 미사여구로 중언부언하게 마련이어서 만리장성이 되기 일쑤였다.

명나라 태조는 건국후 철야로 정무에 시달렸다. 쉴틈없이 일을 봐도 신하들이 올리는 건의서며 보고가 그치지를 않고 그것들이 하나 같이 장문이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한번은 형부주사(刑部主事) 여태소(茹太素)가 문서를 올렸는데 엄청난 분량이었다.

관원을 시켜 읽게 했으나 1만자 이상으로 돼 있는 이 문서는 6천370자를 읽어가도 본론이 나오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태조는 읽기를 중단시키고 사관을 불러 앞으로 올리는 상주문은 사실만을 간단히 적도록 엄명했다.

까다롭고 번거로운 문장을 번문(煩文), 형식만 차리는 예의(禮儀)를 욕예(縟禮)라 하지만 찰스 디킨즈는 그의 소설 '귀여운 도리트'에서 수속만 번거롭고 사무능률은 오르지 않는 관청을 '번문욕례청'이라고 풍자하고 있다.

본시 관(官)이나 윗전 의식을 가진 사람들, 혹은 옛날의 귀족들은 평민이나 서민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 모르는 글,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를 즐겨 썼다.

아랫것들이 알아듣는 말을 쓰는 것은 품위를 떨어뜨리고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자존심을 손상시키며, 자기 필체를 알아보게 하는 것을 챙피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 양반이나 귀족들은 문자를 즐겨 썼다. 글을 써도 어려운 문구를 놓어 썼고, 글씨를 써도 최대한 흘려서 획이 어떻게 돌아 갔는지 모르게 했다.

옛 귀족들 사이에 악필이 많은 것도 그래서이다.

하지만 잘 알고 많이 아는 사람은 결코 어렵게 말하고 어렵게 쓰지 않는다. 진정으로 위민봉사하는 관(官)도 결코 일을 복잡하게 꾸리지 않는다.

참스승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주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 폰이나 아이폰 등 최첨단을 달리는 기기는 사용하기가 너무 어렵고 까다로워 노약자는 물론 신세대 젊은이들까지도 사용법을 다 모른다고 한다.

사용료는 배가 비싸고…. 간단해 복잡하지 않고(單純), 뚜렸하고 분명한 명료(明瞭)함의 가치를 정녕 모르는 것일까.

/무등일보 주필  김 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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