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남원 인월(引月)
인월(引月)은 달을 끌어올린다는 말이다. 인월 사람들은 달을 끌어올려 지리산 자락에 걸쳐놓고 사는 사람들인가? 그렇다. 인월 사람들은 달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선이다. 그것을 고려말에 이성계 장군이 가르쳐 주었다.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이 함양에서 관군을 제압하고 지리산을 피해 인월 황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성계 장군은 고려군을 이끌고 운봉을 거쳐 황산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해가 지자 컴컴해졌다. 그때 이성계는 하늘에 빌었다.
“이 왜군이 달아나기 전에 무찔러야 하오니 달을 끌어올려 주소서.”
그러자 둥근 달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달빛을 이용하여 왜군을 무찔렀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印月은 引月이 되었다.
이곳은 지리산 자락을 등지고 멀리 황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월면 취암마을.
‘황산지역 문학과 예술동호회’ 멤버인 김재순 회원이 살고 있는 집이다. 이곳에서 회원 번개팅이 이루어졌다. 남원시 인월면 취암마을 맨 꼭대기 집. 마당 한쪽에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그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오늘 모임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황산지역 문학과 예술동호회’에서 주관한 작가 초청 강의에 앞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자 하는 뜻으로 번개팅으로 모인 것이다.
회원 중 한 사람인 김재호 목사님께서 전주에서 강사로 오는 나를 남원에서 맞아 이곳까지 안내하였으며 김복임 회장 내외를 비롯한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넓지는 않지만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에는 커다란 바위를 타고 줄기를 벋어놓은 다래나무가 있고 각종 향내 나는 허브 식물과 나물이 돌 틈에 숨어 있다.
바구니만 들고 나서면 사방이 마트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오늘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하여 어제부터 흥이 나서 이쪽 밭과 저쪽 밭을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준비했단다. 기쁜 마음으로 준비해야 더 맛이 난단다. 누군가에게 내가 정성 들여 키워온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김재순 회원은 타고난 봉사자인가 보다. 오늘 내어놓은 음식들은 돈 주고 사 온 것은 한 가지도 없다고 한다. 모두가 직접 키운 재료들이란다.
접시 하나에 가득 담겨 있는 야채 샐러드에는 아홉 가지 채소가 담겨 있단다. 그중에는 금전초도 있고 신선초도 있단다. 오가피 잎도 있고 엄나무 잎도 있으며 인삼 뿌리도 있단다. 보물찾기하듯이 한 가지씩 나물을 찾아내어 맛보는 반찬들이 하나같이 싱싱하고 향긋하여 입에 감긴다. 오늘 모인 사람은 십여 명. 모두가 회원은 아니다. 김재순 회원의 친지들도 있다. 그러나 맛있게 먹는 것은 한결같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
그는 온통 에너지 덩어리다. 그만 그러는 게 아니라 황산지역 문학과예술동호회 회원들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간단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지리산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하면서 한가하게 살아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단다. 그들은 산골에 살지만 결코 촌사람이 아니다. 도회지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활동력이 왕성한 사람들이다.
하얀 머리에 혈색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김재순 회원은 글도 잘 쓴다. 황산문예 창간호와 2호에 실린 그의 글을 보면 문장이 거침없이 죽죽 벋어나간다. 생김새나 사는 것과 닮아 있는 그의 글은 읽을거리가 많다.
『황산문예』 2호에 실린 ‘특집. 첫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자라지 않는 나의 첫사랑」에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던 소꿉친구 창규라는 아이가 미국으로 떠난 후 어른이 되어 두 번이나 찾아왔다가 돌아갔고 그때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던 주인공은 시리도록 아픈 ‘창규앓이’를 했단다. 전개되는 이야기도 거침이 없고 문장도 시원스럽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아예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벌똥나무라고 하는 커다란 보리수와 두세 뼘쯤 되는 통통한 두릅나무가 서 있는 뒷밭에 서 있으니 멀리 황산이 보인다.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을 섬멸하여 노략질을 잠재웠던 전투 장소다.
“저 황산의 오른쪽 아래 평지가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운봉이 아니라 인월이지요.”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본 황산은 큰 산이 아니라 우리 동네 뒷산만 한 평범한 산이다. 어쩌면 인월 사람들은 지리산의 정기와 저 황산의 정기를 함께 받아서 지칠 줄 모르는 활력과 맑은 영혼을 간직한 사람들이 되었나 보다.
인월이라는 곳을 까마득 모르고 있었던 나에게 인월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목사님도 고맙고 지리산 사람들의 인심을 베풀어 준 회원들도 고맙다.
인월(引月).
그 달은 이제 나에게도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