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철도 SRT 유감
국민철도 SRT 유감
  • 전주일보
  • 승인 2024.09.17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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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

“와∼ 사람 줄이야. 강남 대단하다” 50여 명도 넘는 사람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만원(滿員) 강남 아침 풍경이다. 오전 9시경. 서울 강남 수서역 한 병원행 셔틀버스 정류장이다. 뒤에 오는 이가 혼잣말로 외치다시피 한다. 

서울 강남 수서행 기차를 타기 위해 전주 집을 나선 때는 새벽 6시. 택시를 타고 익산역으로 40여 분. 7시 40분발 수서행 고속열차 SRT를 타기 위해서다. 전주를 거치는 전라선에서는 하루 2회 밖에 없다. 그래서 전주에서 강남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고속버스나, 강남 하루 숙박. 아니면 익산역까지 발품을 팔아야 비로소 강남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

전주에서 KTX는 용산행으로 하루 19편. 서대전을 경유하는 5편을 빼면 14편에 불과하다. 서대전 경유 5편도 전주병이 지역구인 정동영 의원이 국토부 추궁 끝에 얻어 낸 결과다. 사실상 고속철이라 하고 논산·서대전을 경유하니 오송 통과 직통보다 무려 40분이 더 걸린다. 아는 분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국토부와 코레일의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다.

SRT. 홈피에 보니 ‘국민철도 SR’이라 뜬다. 안내를 살피면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5개 코스. 그렇지만 내용 면에서는 수서·부산 하루 40회 왕복. 수서·광주(송정)가 22회. 목포가 10회다. 수서에서 전주·여수(전라선), 창원·진주(경전선), 포항(동해선)은 고작 ‘2회에 불과’하다. ‘국민철도’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라선이나 경전선·동해선은 지역민보다는 서울(강남)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시간을 억지로 만든 느낌이다.

전주에서 서울을 갈 때마다 고속버스와 기차를 주로 이용했다. 버스를 이용하다 고속열차 개통 후 용산이나 종로, 여의도 등 서울 도심에 일이 있을 경우는 전주역을 찾아 KTX를 탔다. 그런데 강남이나 송파, 서초는 경우가 달랐다. 서울의 교통 사정상 용산역이나 고속터미널에서는 대치동 쪽 강남으로 접근하는 데는 시간 반이나 필요하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강남을 가는데 SRT를 딱 세 번 이용했다. 많이 불편했다. 세 번 다 전주역이 아닌 익산역이다. 왜 이리됐는지 의문이다.

전주·익산 간 택시 대략 45분 정도. 요금은 3만5천원이다. 기차 요금 2만7천원. 강남을 가기 위해서는 편도 요금만도 6만2천원이 넘는다. 반면 전주·수서간 SRT 요금은 29,700원. 택시 요금 포함해도 거의 반값이다. 익산역에서는, 광주발 수서행 SRT가 하루 22회. 전라선 2회 포함 24회다. 전주를 포함한 순천·남원 전라선에서는 딱 두 번이니 말하기 되려 부끄럽다.

기회비용(機會費用, Oppurtunity Cost). 백과사전에 “어떤 자원이나 재화를 이용하여 생산이나 소비를 했을 경우, 다른 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했었다면 얻을 수 있었던 잠재적 이익”이라 설명한다. 전주를 비롯한 남원·순천·여수로 이어지는 전라선 근처에 사는 ‘지방민’들은 (잠재적 내 이익을 위해) 강남이라는 지역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고, 또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국민철도’를 내세우는 SRT 앞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전라선 주변, 섬진강 따라 전라좌도(左道) 지역민(?)에게는 기회비용이 아니다. ‘불편비용’이다. 같은 전라도에 살면서도 시간과 돈을 길바닥에 쏟아야만 되는 현실이다.

SRT가 전라선에 오게 된 것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20대 국회에서 지역민들의 오랜 민원 제기 끝에 강남 수서를 종점으로 하는 전라선 SRT 고속열차가 2편 생기게 됐다. 시늉만 했다. 추후 추가 증회 요구에 진행된 내용은 ‘국토부의 고속철도 용량 초과’였다. 경부선과 호남선에 차량 집중 투여로, 다른 노선 추가는 도저히 ‘수용한계치’를 넘어 불가라는 답이었다. 과연 그럴까? 첫 번째 의문이다. 그래서 전라선 2회. 경전선 2회인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두 번째로 살펴보자. 전남북·광주 포함 500여만 주민 중에 전주·완주 75만, 무진장, 임순남, 구례·곡성, 순천·광양, 여수, 보성·고흥 등 15개 시군 대략 180만 명 정도의 전라좌도 주민이 살고 있다. 전라도민의 무려 36% 안팎. 그럼 SRT 호남선 22회에, 전라선 2회. 너무하지 않은가? 참고로 KTX 호남선 하루 26회. 전라선 14편이다. 경부선에서 못 가져온다면, 호남선에서 일부를 빼 전라선에 배치하는 방법은 없을까? 호남·전라 두 차량을 접속하는 것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전주의 정동영·김윤덕·이성윤, 완주 안호영, 임순남·장수의 박희승, 구례·곡성·순천 김문수·권향엽, 여수 주철현·조계원 의원이 있다. 근데 국토위에는 불행하게도 한 분도 없다. 다행히 호남선과 전라선이 분기점을 이루는 익산에 이춘석 의원이 국토위다. 이번 국정감사 기대한다.

언제까지 ‘차별의 땅’에서조차 ‘5등 국민’으로 ‘불편비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지. 심리적 거리는 외국 나가기보다 강남 가기가 더 멀다. 당장 내일도 새벽 4시 집을 나서, 강남행 5시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을 만들었다.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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