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성(熾盛)하던 여름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는 처서(處暑)도 지나고 낼모레면 백로(白露)다.
올해 더위는 지독하게도 덥고 끈적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버텨도 태양이 이울어 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하나 싶다. 나 또한 그 섭리에 따라 오고 갈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지구에 어쩌다 생명으로 유형화하여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게 경이로울 따름이다. 계절이니 시간이니 하는 이름조차 조심스러운 이 말년의 삶에 조금씩 늘어가는 변수(變數)를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 무사했음을 고맙게 안다.
지난해 80을 앞두고 신체적 변화가 찾아왔다.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가슴이 몇 십 미터만 빠르게 가도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척주 신경이 틀어진 척추에 눌려 지독한 통증이 찾아와서 하마터면 수술할 뻔하기도 했다. 어떤 자세로 잠이 들어도 잘 자던 몸이 조금만 눌려도 저리고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부도 한번 생채기가 나면 그 자리가 변색하여 새로운 세포로 바뀌지 않는 노화현상이 심해졌다. 지지난해까지 팔팔하던 신체 모든 곳이 달라지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이제 제대로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서글픈 생각에 우울했다.
뜨겁게 삶아대던 여름이 슬그머니 선선한 가을에 자리를 내주듯 내 몸도 이제 더는 열기를 뿜지 못하고 가을 낙엽처럼 그렇게 물들어가는 과정으로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안 먹던 영양제도 구해 먹고 균형 식단을 위해 쿠팡을 통해 새벽 신선 식품을 배달해 먹는다. 갑작스런 변화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려는 건 아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그 늙어가는 과정을 늦추겠다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불노초를 구해오라고 3천 동남동녀를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아 허사가 되었고 나이 50에 병사하고 말았다. 이치를 거슬러 섭리를 이기는 인간은 없다.
요즘 이런저런 일이 중첩되어 거의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산다. 한 주일에 한 번 세 시간 정도 사무실에 나가는 일 외에 시간나는대로 자전거를 타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런 날도 5~6시간 이상 모니터와 자판을 앞에 두고 씨름한다. 눈에 좋다는 메리골드 꽃차를 마셔도 밤 9~10시쯤 되면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때가 되면 얼른 잠을 청해 새벽 2~3시 무렵까지 잔다. 피로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깨면 다시 밀린 일을 시작한다. 그 시간에는 주로 글쓰는 일을 한다. 머리도 맑고 생각도 조금 신선해 있어서 진도가 좀 나간다. 그러다가 5시 쯤에 다시 덧잠을 잔다.
이런 작업량이 늙은 몸에 과하다는 걸 알지만, 그저 편하게 지낸다 해서 내 몸이 늙지 않는 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몸이 따라주고 머리가 돌아갈 때 뭐든 해볼 생각이다. 젊은 시절에 온갖 잡기(雜技)와 호기심에 빠져들어 가치 없이 낭비해버린 아까운 시간을 이제야 후회하며 남은 시간을 쪼개 쓰느라 안간힘이다. 그러면서 아직 내게 일할만한 여력(餘力)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찍이 이런 자세로 뭔가 열심히 했더라면, 조금 일찍 철이 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후회는 빠를수록 좋다던가?
아직 여름이 남아 마지막 심술을 부리고 있는데 벌써 벚나무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떨어지고 있다. 일찍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몸을 넉넉히 불렸으니 할 일을 다 했다는 여유일까? 남보다 일찍 한 해를 마감하고 잎들을 떠나보내는 나무의 심사(心思)가 궁금하다. 어쩌면 내년 봄을 위하여 남은 기간 열심히 꽃눈과 잎눈을 만들어 둘 준비에 바쁜지도 모르겠다. 오지랖 넓게 나무의 속내까지 짐작하느라 이 새벽에 깨어 자판을 두들기는 건 아닐 터인데, 왜 난 늘 궁금한 일이 그리 많은지….
우리가 시간이라고 이름 지어 숫자를 세어 온 그 변화의 과정들은 광대한 우주 자연의 일상적인 흐름이었을 뿐이다. 그 거대한 흐름에 지극히 작은 먼지로 찰나(刹那) 간(間) 존재하다 사라지는 인생에 욕심 많게 웬 명분(名分)을 만들어 붙이고 핑계도 많은지…. 내가 붙들고 늘어지는 그 명분의 가치를 저울로 달아 본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요즘 최신 기술로 재면 0.001 나노그램(nano g)이라도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게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서글픈 생각에 이른다.
한갓되이 노년의 어지러운 심사를 우주 섭리에 붙여 풀어보려 한 내가 어리석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견주어볼 수조차 없는, 모기가 독수리와 겨루어 보려 을러댄 셈이다. 겁도 없다.
다만, 지긋지긋한 여름을 떠나보내는 이 홀가분한 마음이 잠시 상궤(常軌)를 벗어나고파서 한 자락 가을 꿈을 꾼 것이려니 치부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