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種)의 위기
종(種)의 위기
  • 김규원
  • 승인 2024.08.14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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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옛날이 그립다. 밭에 가면 물고랑에 올챙이가 바글바글했다. 종달새가 하늘 높이 솟아 노래하다가 수직으로 착지하였다. 꽃뱀은 참개구리를 잊지 못하여 풀 섶을 수색하고 올챙이들의 꼬리가 사라질 날을 기다렸다.

 

개구리가 잠 깨어 나온다는 경칩이면 봄 냄새를 맡은 수컷들이 세레나데를 합창했다. 그들은 종의 번식을 의무로 여기고 필사의 쟁탈전을 벌였다. 승자는 암컷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암컷이 산란하면 알 무더기에 본능을 쏟았다. 비로소 번식의 기도가 막을 내린다. 1980년대 초까지는 밭고랑에 물이 넘치고 개구리의 산실이었다. 오월이면 올챙이들이 부지기수로 헤엄을 치다가 꼬리를 버리고 네 발로 흙을 밟았다. 이 행사는 칠월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이 무렵에는 뱀이 바빠진다. 올챙이들이 어린 개구리로 변하며 아장거리는 무렵이다. 뱀은 지면에 밀착하여 은밀하게 접근한다. 한눈파는 사이에 개구리는 생이 끝난다. 사람도 자칫하면 뱀에 물렸다. 한 번은 들깨밭에서 몸을 낮추고 풀을 매다가 독사한테 물릴 뻔했다. 그래도 그때가 아름다웠다. 개구리와 뱀이 공생하는 건강한 생태원이었다.

 

봄이면 곤충과 벌레들이 법석을 떨었다. 벌과 나비는 꽃피는 날을 부지런히 살폈다. 나비는 짝을 지어 어느 틈엔가 녹색 잎에 알을 붙인다. 사마귀며 무당벌레가 먹이를 고르고. 땅강아지는 땅을 갈아 지렁이를 찾고, 지렁이는 흙을 먹고 거름을 배설한다. 거미는 곤충들이 통행하는 오솔길에 그물을 치고, 개미들은 진딧물의 단물을 빨았다. 들깨가 여물면 참새와 뱁새가 부산하게 배를 채웠고, 가을에 배추를 심으면 달팽이와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밭농사를 지으면서 이들과 나누며 살았다.

 

어느 때부터 하늘이 뜨거워지고 땅을 말렸다. 물이 고여 있던 올챙이 산실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먼지가 날렸다. 비가 내려도 마른 땅이라 금세 스펀지처럼 스며들고, 소나기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흘러 버린다. 개구리가 알을 낳을 물웅덩이가 없다. 알이고 올챙이고 눈을 씻고 보아야 보일까 말까다. 마침내 참개구리가 사라졌다. 뱀도 참개구리와 운명을 함께 하였는지 안 보인다. 땅속이 말라 단단해지니 땅강아지도 안 보인다. 날씨 탓인지 벌도 귀하다.

 

흔하던 참개구리, 꽃뱀, 맹꽁이, 사마귀, 땅강아지, 물장군, 장수하늘소, 크낙새, 종달새는 어디로 이주했을까? 숲이나 강가로 피난했을까, 아니면 멸종일까? 그들이 떠난 땅이 쓸쓸하다. 생명체가 하나둘 사라진 것은 지구별의 크나큰 불행이다. 생명체의 낙원이 죽음의 땅으로 전락하고 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인간이나 식물이나 고통은 매한가지다. 들깨는 종자도 건지지 못했다. 긴 장마로 뿌리가 썩어버렸다. 사과는 화상을 입어 녹았다. 이렇게 더우면 바다도 끓을 것이다. 물개며 바다사자며, 청어 명태가 어찌 버틸까. 기상이변이 심상치 않다. 변화가 극심하다.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나고 날이 가물면 저수지 바닥이 갈라진다. 온난화가 상상을 초월한다. 기온은 40도를 가볍게 오르고 심지어 50도까지 치솟는 곳도 있다고 한다.

 

겨울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극지방의 빙산이 녹고,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는다. 해가 갈수록 길고 가물고 무더운 여름. 녹색의 풍요한 경작지가 황량한 사막으로 변한다. 식량난을 초래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바다가 온난화로 부푼다. 수온 상승에 물고기도 줄어든다. 지구 온난화에 견디지 못하는 종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몸부림치다가 최후에 사라질 생명체를 그려본다. 만물의 영장이라 우쭐댄 인간이다. 긴 세월 주름진 내 얼굴과 어린 사랑하는 내 손자가 보인다. 나는 여한이 없지만, 손자가 안타깝다.

 

누가 지구의 온난화를 유발하고 앞장서는가.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했다. 자연 훼손과 문명의 탐닉은 지구를 종말로 내몬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고 있다. 지구 종말의 남은 시간이 불과 100초라고 한다. 자정이 종말이라면 밤 115820초다. 종말 열차는 종점이 코앞이다. 가속도가 붙어서 멈추기 어렵다. 열차에는 수많은 종이 떨고 있다. 이미 열차 밖으로 추락한 종이 많다. 열차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핸들은 인간이 쥐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지구를 살리는 것은 내 손에 달려 있다. 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자. 에어컨을 아끼고 낮추자. 육식을 줄이자. 전기를 아끼자. 물을 아끼자. 화석연료를 줄이자. 지구를 살리자는데 누가 반대할까?

 

나 하나가 무슨 힘이 될까? 고개를 흔들지만, 아니다. 온 세계 80억이 한마음으로 뭉치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능히 살릴 수 있다. 지구의 안녕은 인간을 비롯하여 만물 모두의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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