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해병의 길
영원한 해병의 길
  • 신영배
  • 승인 2024.07.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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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어렸을 적, 아주 작은 꿈이 있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했었다.

중학교 때에는 카톨릭 신부를 꿈꾸었다. 하지만 종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꿈을 접어버렸다.

10대를 지나 어느덧 군대에 갈 나이가 됐다. 해병대에 입대했다. 당시에는 해병대 훈련소가 진해에 있었다.

1973년 10월 10일 해군과 해병대가 통합된 직후여서 그랬던지 해병대 교관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매우 사납게 들렸다.

훈련기간 내내 틈만 나면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무적 해병’ 등의 해병대 특유의 구호를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구호를 외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해병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8주 신병 교육을 마친 후 후반기 교육을 받기 위해 진해를 떠나 해병대의 고향으로 알려진 포항에 도착하던 날, 훈련병들을 수송하기 위해 나온 선배 해병의 늠름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당시 선배 해병은 기합이 바짝 들은 신병(필자 포함)들에게 “해병은 오와 열이다. 안되면 될 때까지 각오로 교육 훈련에 임해라. 해병은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된다.”라며 “해병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해병대에 입대해 교관과 동기를 제외한 타 해병을 처음으로 대면한 신병들로서는 그 선배 해병은 곧 하느님이었다. 5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후임 해병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그 멋진 선배 해병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리고 4주 후반기 교육을 수료한 후 필자와 몇몇 동기생들은 해병 1사단 11연대 7대대에 배치됐다.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이 근무했던 부대다. 당시 해병 1사단 11연대는 2연대와 3연대, 7연대 등의 보병부대를 지원하는 포병연대였다.

당시 해병 제1 상륙사단 11연대 7대대장은 전북 남원이 고향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50여 년 전 7대대장이 고 채수근 상병과 같은 고향이다. 당시 7대대장은 부하를 끔찍하게도 사랑했다. 이 역시 지금의 7대대장과 같은 모습이다. 

가을 추수철에 벼 베기 대민 지원을 포항 근처 어느 작은마을로 나갔는데 대대장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해병대원들이 낫질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다며 직접 낫을 들고 몸소 벼를 베는 시범을 보여줬다. 

당시 해병대 1사단은 사단 병력 모두가 의무적으로 매주 수요일 완전군장을 메고 12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에 뛰는, 이른바 ‘무장 구보’를 실시했다. 그때에도 대대장을 비롯해 중대장 등 간부들은 열외로 하지 않고 언제나 부하 해병들과 함께했다. 

특히 여름철 전투 수영을 하기 위해 영일만 도구 해안에 도보로 해병들이 이동해야 하는데, 30여 도를 웃도는 폭염에 혹시나 해병들이 일사병에 노출될까 조바심하여 대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소금을 직접 챙겨서 해병들에게 나눠주었다. 

영일만을 한바퀴 밤새 걷는 행군에도 어김없이 대대장과 중대장 등 간부들은 해병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일들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진정한 해병대 정신을 발휘한 참 군인이었다.

각설하고 작금의 해병대 사령관과 전 해병 1사단장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100만 해병대 예비역과 3만여 명의 현역 해병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다. 부하들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은 영달하겠다는 탐욕에 치가 떨린다. 

격류에 부하들을 몰아넣어서 누군가의 눈에 들고 그것을 자랑으로 내걸어 영달하겠다는 욕심이다. 자신을 위해 부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해병대 사령관이 되면 과연 영광스러울까? 

해병대 예비역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니 혈압이 올라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다. 마치 나만 배불리 먹겠다는 욕심에 주둥이를 밥통 속에 처박고 꿀꿀거리면서 사료를 먹는 돼지 같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오늘을 만들어 준 해병대 명예를 저버리는 일은 먹을 것만을 탐하는 돼지의 식탐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를까? 그들을 보며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기자를 하는 동안 필자는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났다. 억울함을 호소하느라 목숨을 스스로 불태우는 일도 보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소중한 명예와 인격을 짓밟고 농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과 슬픔, 억울함 등이 죽음 앞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자가 꿈꾸었던 ‘신부의 길’도, ‘군인의 길’도, ‘언론의 길’도 70여 년을 살다 보니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전 해병 1사단장으로서의 명예를 지켜주길 선배 해병으로 진심으로 당부한다. 대한민국과 해병대, 그리고 국민을 위해 모두 내려놓고 진실을 밝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대통령, 영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휘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부하 해병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는 명백한 사실이 중요하다.

해병으로서, 지휘관으로서 마지막 책무는 채수근 해병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가감 없이 밝혀서 채 상병과 그 부모와 가족, 해병대 예비역, 국민에게 해병의 진심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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