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단어 ‘탄핵’
낯설지 않은 단어 ‘탄핵’
  • 전주일보
  • 승인 2024.07.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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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단상
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국회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올려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의 청원자 수가 73일 오후 2시 현재 1012,389명에 달했다. 620일부터 720일까지 진행되는 청원이어서 그 결과가 궁금하다.

3일 오후 2시 현재 청원 참여 대기자가 3만여 명이었다. 대기자 수가 어제도 26,000여 명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마감일까지 몇백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다. 어쩌면 이미 많은 국민의 마음에서 윤 대통령은 탄핵되었는 지도 모른다.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말이 나오는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탄핵이라는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리게 했던 경험이 있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대통령의 직무를 한낮 개인에게 맡기다시피 했던 박 전 대통령 때의 일이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탄핵을 청원하는 데 대해 대통령실은 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으므로 탄핵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중대한 범법 행위는 없으니 할 테면 해보라는 의미인지 모르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정말 대통령실은 범죄행위만 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위직 공직자로서 국정을 수행하고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지는 자리다. 전제 군주 시대에도 나라의 모든 일에 임금의 덕을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직후 대선 다음 날 아침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겠다고 했다.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도 했지만, 협치는커녕 야당과는 만나지도 않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대패한 뒤에 다시 국정 쇄신과 협치를 말했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딱 한 차례 만나서 말만 시키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 그 뒤로 쇄신도 협치도 없이 지난날 모습으로 돌아가 여전히 당당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과 약속을 전혀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 듯 내 맘대로 하는 이런 지도자는 일찍이 없었다. 국민을 향해 약속하는 사람과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물이 따로 있는 듯, 도대체 종잡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적어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변명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변명조차 없다. 그냥 없던 일처럼 지나가고 만다. 64주차 갤럽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25%로 지난주보다 1%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전주보다 2% 증가한 66%였다.

지난주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서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두고 극우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의 내용과 비슷한 시각으로 판단하더라는 기사가 떴다. 그 일을 각급 언론이 보도하고 야당에서는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아직도 해명이나 반박이 없다.

그 내용에서 윤 대통령은 MBC, KBS, JTBC 들 방송 매체를 좌파언론이라며 이들 언론이 이태원에 사람이 모이도록 유도하여 참사가 발생한 것으로 말하더라는 게 김 의장의 회고록에 적힌 내용이다.

그후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방송지재구조 개편을 하다가 야당이 탄핵 절차를 시작하자 사퇴하여 탄핵에서 벗어났다. 다시 임명된 김홍일 방통위원장도 2인 이사회를 열어 방문진 이사 선임 등을 2인 체제에서 긴급가결했었다.

국회가 방통위원장 탄핵안을 접수하기 직전에 김 위원장이 또 사퇴하고 대통령은 즉시 재가하는 스피드 처리로 방통위원장 업무 공백을 막았다. 6개월 만에 방통위원장이 두 번 사퇴하는 기묘한 현상이 거듭되었다.

언론이 점점 목소리를 잃어가고 국민은 보이는 것만 알고 믿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나라의 언론마저 입틀막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3월 스웨덴 V-DEM 연구소는 한국의 민주화 지수가 28위에서 47위로 독재화가 진행되는 나라로 분류했다.

지난 정부에 14위까지 올라갔던 민주화 지수가 28위로, 다시 47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권력이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건 민주주의 국가의 행태가 아니다. 감춰야 할 일이 없다면 언론을 장악할 이유가 없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국회에 청원이 들어왔고 14 일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선 숫자가 청원에 동참하는 상황을 보면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른 게 아닌가 싶다. 반성하고 잘못을 빌며 고치려는 뜻이 없이 버티기로 국민을 이길 수 있을까?

고사성어에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다. 전제 군주 시대에도 임금이 백성의 눈에 벗어나면 끌어내릴 수 있었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이 성나면 배를 엎어버리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손바닥에 쓴 임금 자를 지우는 건 더욱 쉬운 일이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탄핵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만드는 도구를 국민이 쥐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주인이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큰 매()를 들었는데도 못 본 척, 모르는 척으로 넘어갈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모두 털어놓고 빌며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일 듯하다.

물론 지난 총선 후처럼 반성하는 척, 달라질 듯이 제스처만 보이다가 원상으로 돌아가는 가면 쓰기 아닌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분명한 건 주인이 단단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길뿐이다.

총선에서 192 : 108을 만들었을 때 제대로 빌고 고쳤더라면 오늘의 어려운 고비를 만나지 않았을 터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나를 낮추고 물처럼 흘러가며 적시고 감쌀 줄 아는 정치가 절실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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