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산책길에서
6월의 산책길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24.06.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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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만/수필가
이용만/수필가

6월이다푸르다. 산과 들이 다 푸르다. 세상이 온통 푸르름이다건지산에 들어선다. 나무도 푸르고 풀도 푸르다. 사람들도 푸르다

이곳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줄을 맞추어 서 있는 편백나무 사이로 맨발로 걷는 길들이 육상 경기장의 트랙처럼 줄줄이 나 있다. 이곳에서는 신발을 신고 걷는 사람이 어색하다. 얼른 지나가야 한다.

건지산에 이르면 나도 신발을 벗는다. 내가 신발을 벗는 곳은 건지산 동쪽 천마산 아래 이슬람교 성전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맨발로 걷기 시작하여 서쪽 끝 조경단까지 가는 것이다.

산 아래로만 나 있는 산책길이 따로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가지 않는다. 어차피 산에 들어왔는데 평탄한 길만 걸으면 의미가 없다. 산이란 오르락내리락하여야 제맛이다. 그리고 평지만 걸으면 혈압이 내리지 않는다. 오르막길을 힘들여 올라가야 혈압이 떨어진다.

산책길에서는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라디오를 틀거나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것들은 명상에 방해가 된다. 산책길에서는 나만의 생각을 하여야 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다. 모처럼 만나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산에 왔으면 산을 감상해야 한다. 나무도 풀도 벌레도 새들도 보아야 한다. 구불구불 보얗게 나 있는 길도 바라보아야 하고 비 온 뒤에 길바닥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는 다시 길 밖 풀 속으로 던져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해주는 말이 있다.

박 씨 하나 물어다 줘.’

산에 들어오면 내가 주인공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내가 왕이다. 말투도 내 멋대로다. 목소리 바꾸기를 위해 상당히 노력했는데도 여태 바꾸어지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때로는 시를 낭송해 보기도 하고 시를 외우기도 한다. 흥얼흥얼 노래도 불러본다. 그런데 라디오를 틀거나 음악을 들으면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잠시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은 별난 하늘이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은 평소에 바라보던 하늘이 아니다. 더 짙고 더 푸른 하늘이다. 바람이 불 때는 높이 솟은 나무 끝이 흔들린다. 하늘도 흔들린다. 흔들리는 하늘은 바다가 된다. 하늘과 바다가 본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에 해오던 하루 1만 보 걷기를 맨발 걷기로 바꾸면서 산길을 택하게 되었다. 맨발 걷기는 시멘트 길에서 할 수는 없다. 흙길을 걸어야 한다. 이젠 산에 들어오면 으레 신발을 벗는다. 흙길을 만나면 신발을 신고 걷기는 아깝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 없던 기운이 난다. 8천 보쯤 걸었는데 걷기가 싫어질 때는 산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으면 다시 1만 보도 걸을 수 있다.

저기에서 소설 속의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그는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목도리까지 하고 다닌다. 거기에 고개를 숙이고 조심조심 걸어온다. 맨발 걷기를 한다. 고개를 드는 것을 보지 못해서 어떤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소설 속의 여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마 몹쓸 병에 걸려 치료차 산에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도 아직 말을 못 붙여봤다. 그에게 말을 붙여볼 날이 언제일지 나도 모른다.

전에 이 산을 종횡무진 두 마리 토끼가 되어 돌아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벗어놓았던 나무는 그대로 서 있는데 그는 없다. 멀리 갔다. 살아서 들림을 받아 천국으로 곧장 가야 한다고 충청남도 금산의 어느 기도원으로 가서는 연락을 끊었다.

그의 말로는 말세가 되어서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했다.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는데 그는 들림을 받아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영 소식이 없다. 그가 꼭 들림 받아 천국으로 갔으면 좋겠다.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친구가 된다. 몇 마디 말에도 반갑게 받아준다. 대답도 잘해 준다. 자신이 숙맥이라 생각하여 말 붙이기를 못하는 사람은 산으로 갈 일이다.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그냥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만 던져도 대답을 곧잘 해 준다.

어쩌면 소설 속의 여인도 말을 걸면 대답을 해줄 것 같다. 소설처럼 멋지게 말을 붙여보아야겠다. 내친김에 한 편의 소설도 나올 법하다.

6월의 산책길은 푸르를 대로 푸르러진 녹음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피하여 걸을 수 있으므로 최상의 산책길이다. 특별한 풍경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적당히 한눈을 팔아도 된다. 그래서 산책하기에 좋은 때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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