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 · 말동무
길동무 · 말동무
  • 전주일보
  • 승인 2024.06.13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숙/수필가
김영숙/수필가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라는 속담이 있다. 길벗이라는 순수 우리말도 있지만 요즘 들어 ‘길동무’라는 말이 점점 좋아진다. ‘길동무’라는 말에는 꾸밈도 숨김도 없이 몸의 솜털이 쏠리는 원초적인 순수함이 있는 듯해서 좋다.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는 시민들에게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란?’ 질문의 현상 공모를 했는데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 1등으로 뽑혔다고 한다. 그러니까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가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 빨리 갈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동반자를 영어로 표현하면 ‘companion’이다. 바로 길동무, 즉 말동무이다.

갈수록 어수선하고 빡빡해지는 삶 속에서 이웃 간의 감정마저 메말라가는 시절에, 한 단체에서 20여 년이란 세월을 한결같이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도 드문 일이라 생각한다. 바로 「전북 내 사랑 꿈나무」, 약칭 임실 꿈나무라는 단체 이야기다. 임실 꿈나무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단체는 아니다. 눈에 띄게 하는 행사도 많지 않고 행정기관의 지원을 받지도 않는다. 특별히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알음알음 이웃들에게 조용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봉사 모임이다. 전북에 본부를 두고 각 시군에 지부를 둔 전북에만 있는 유일한 봉사단체인데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임실지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활동 주목적은 다문화가정 및 조손 가정 자녀의 문화체험 기회를 돕는 도우미라는 말이 어울리는 단체다. 또한,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 경조사에 형제애를 가지며, 상부상조함의 목적은 덤으로 운영된다. 순전히 회원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업을 추진하는 순수 단체이다 보니, 월 회비 삼만 원으로 해마다 우리 문화체험 답사 및 장학금 지급까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실군은 전체 기혼자 가운데 국제결혼 비중은 40%에 달한다. 비단 우리 군 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이 그러하다. 결혼이주여성이 급증하면서 농촌지역은 심각한 혼란을 겪는 게 사실이다.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남편과 불화는 물론 고부갈등으로 이어지고, 특히 자녀교육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다. 물론 전반적으로 이들에 관한 관심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정책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간과할 때 당장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론 사회통합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게 자명한 일이다. 그런 가운데 「내 사랑 꿈나무 임실지부」는 가정과 학교에서 부족한 우리 문화체험 부분을 충족시키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물론 다문화가정을 위한 사업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모임이든지 회원 간의 상호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잘되는 모임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임실 꿈나무는 한발 앞서가는 단체임이 분명하다. 소박한 살림이지만 가끔 나들이를 통해 회원 간의 우의를 다진다. 이 또한, 집행부의 탁월한 통솔력과 성실함에 회원 한 분 한 분이 맞장구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알아야 면장도 하는 일,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아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기에 작년 1박 2일 추자도 문화답사에 이어 올해는 동학사를 거처 부여 부소산성 답사를 다녀왔다.

어쨌든 임실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의 자녀가 편견과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바른 세상을 만드는 길에 우리 임실 꿈나무가 함께한다는 게 뿌듯하다. 우리 아이들이 소외되고 외롭지 않게 잘 성장하여 이 사회에 반듯한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회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그러하다.

이렇듯 우리 살아가는 길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가는 길이기에 더 보람 있고 살맛 나는 건 아닐까? 물론 날마다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함께 가던 사람이 길을 이탈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먼저 떠난 사람도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먹장구름 끼듯이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나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을 길동무이자 삶의 스승으로 삼으며 걸어갈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낮은 자리, 젖은 자리에서 아픈 마음 서로 기대며 울고 웃는 길동무가 되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