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낳은 명물”
“시대가 낳은 명물”
  • 전주일보
  • 승인 2024.06.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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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66

진은숙이 작곡한 사이렌의 침묵을 보았다, 그녀는 클래식음계의 노벨상이라는 지멘스상을 받았다, 노래 끝에서 소프라노는 손짓 몸짓 눈짓으로 없지만, 있어야 할 소리를 보여주었다

그보다 먼저, 사이먼과 가펑클이 The Sound of Silence를 보여주었다통기타께나 짝사랑한 근력으로 소리 내는 침묵의 앞뒤마당을 넘나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류를 타고 용감한 가수가 나타나 없는소리 있는소리 씰데없는 소리로 육십분 연주시간 동안 오십구 분이나 독주악기를 불어댈 수 있는 명곡이 탄생할 줄은 미처 ……

청중은 단1분, 박수 없이 침묵했다 역시 CD*에만 史草할 수 있는… 그럼으로 명인 명곡은 시대가 낳은 명물임을 본다, 노래 끝에서 *CD-Compact Disc 혹은 carried down-내려왔다

졸시「명물」전문

진은숙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오를만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지금까지 이룬 업적만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업적에 얹혀가려는 국수주의적 발상만은 아니다. 진은숙 씨의 인터뷰를 기사에서 읽고, 영상으로 보자면, 그녀는 ‘한국적’이라는 정체성을 특별히 가질 것이 없다고,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민족성이나 조국의 정서를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고 했다.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심한 가난,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잘못했을 때 목사 아버지에게서 들은 꾸중, 그리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엄혹했던 기억들, 그리고 극심한 입시경쟁 등만 생각난다고 한다. 그러니 세계적 예술가들이 흔히 말하듯, 자신의 뿌리에는 조국의 정체성이 도도히 흐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시민의식이나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 존엄성에 대하여 더 큰 반향을 얻는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그럴 만하다.

그녀의 음악 <사이렌의 침묵>을 CD로 듣고, 블루레이 영상으로 보았다.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소프라노가 열창했다. 그런데 제목처럼 어떻게 사이렌siren의 ‘침묵’을 노래[소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를 꾀다가 실패하여 바위로 변했다는 바다의 요정이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 모양을 한 채 바다 위로 솟은 바위에 앉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꾀어 죽게 했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그런 요정의 침묵을 노래한다? 노래 끝부분에서 소프라노는 목소리 없이 잠깐 동안의 패시지passage를 손짓 몸짓 눈짓으로 연주했다. 진은숙 작곡가도 그렇게 말했다. “침묵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어요. 저도 모르지요. 그것은 오로지 가수가 감당할 몫이지요.” 짐작할 만한 의도로 보인다.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는 통로를 보자면, 모든 의미를 말로-소리로만 전달하지는 않는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도 꽤나 유명했던 팝송이다. 가사를 보면 침묵의 소리 안에서 들을 소리, 듣고 싶은 이야기, 그리운 추억들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권력과 부에 추종하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부터 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아는 체한다. 침묵-소리 없는, 말씀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고, 사람다운 삶이 가능할 수 있다. 다만 그 침묵이 맹목적 순종이나 복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침묵은 또 하나의 언어다. 언어의 일차적인 의미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목소리가 아니어도 의사소통에 활용되는 것이라면, 언어의 범주에 들 수 있다. 신호등은 좋은 본보기다. 빨간불이 반짝이면서 ‘멈추라’고 말한다. 물론 파란불이 들어왔을 때는 ‘가라’고 말하지 않는가. 노란불을 깜박이며 신호등은 바쁘다. ‘조심하라’고 서둘러 경고하지 않던가. 그래서 침묵 역시 훌륭한 소통의 언어일 수 있다.

혼령에 처한 노총각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무릎을 꿇고 장미꽃을 바치며 청혼한다. 이때 그 처녀가 침묵을 지킨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결혼 의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침묵은 음성언어보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기간 대학노트에 친필로 작성한 국정 노트가 27권이라고 한다. 이 국정 노트가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여기에 보면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크고 작은 회의에 임할 때마다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을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참모들과의 회의는 물론 위원회 등에 참석해서도 해야 할 말, 챙겨야 할 사항, 담당자에게 질문할 내용, 그리고 대안까지 마련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렇게 준비한 내용일지라도 대통령 자신이 먼저 발언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담당자,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실무자들의 발언을 경청한 다음에 김 대통령은 맨 나중에 요약적 발언을 한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에 “자기 의견이 없는 공무원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이러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토의 토론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방면의 세력들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유발된 혼란으로 보인다. 그 정점에 싫건 좋건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도 시민들을 ‘입틀막’해도 있는 사실은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독가스처럼 시중에 넘쳐나기 마련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민주공화국의 헌법 정신이 무색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 업무지지율이 20%대를 간신히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회의건 왕조시대 제왕처럼 발언을 독점하는 대통령에게 ‘침묵의 미덕’을 가르칠 수는 없을까?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시대가 낳은 명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기만 한 우리의 시대상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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