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과유불급(過猶不及)
  • 전주일보
  • 승인 2024.05.0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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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아파트 헬스장에서 하루 두 번씩 하던 운동을 일주일 세 번으로 줄였다. 체중이 5이 빠지고 배가 들어갔다. 그런데 무릎이 시리고 간혹 어지럽다. 운동량이 과한 모양이다. ‘노인이 가벼운 산책이나 하지 젊은이 틈에 끼냐고 아내가 만류하는 데 나는 생각이 달랐다. 노인은 근육의 감소로 다리가 약해져서 낙상하기 쉽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젊은이 틈에 끼어들었다. 회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 다행히 내 동갑인 경로당 여자가 둘이나 있어서 쑥스러운 생각은 덜하다. 직장에서 퇴직하니 몸이 게을러져 등산도 산책도 옛이야기인 듯 멀어졌다. 자구책으로 집어 든 게 헬스장이다. 욕심이 앞서면 몸을 상한다. 무거운 걸 들고 날마다 쉬지 않고 무리했다. 맛있는 음식도 욕심부리면 체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子張)와 상(子夏) 중에 누가 더 어집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그러하면 사가 낫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子貢問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자공의 물음에 자장과 자하의 학문과 인품을 서로 견주어서 답하지만 결국은 공자는 두 제자의 도에 대한 경중을 비교하여 말하고 있다. 도는 중용을 이용하여 지극함으로 삼으니, 어질고 앎의 지나침은 비록 어리석고 어질지 못해서 미치지 못한 것보다 나은 것 같으나, 그 중을 잃음은 매한가지라고 하였다. (道以中庸 爲至 賢知之過 雖若勝於愚不肖之不及 然 其失中則一也)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을 지키라는 말이다.

절에 갔다. 대중 공양실에서 배식을 손자와 손녀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들을 할머니 옆에 앉히고 나는 다른 식탁에 앉았다. 밥을 다 먹어으니 배가 불렀다. 아내가 쌍둥이 둘이 남긴 식판을 내게 넘겼다. 아까우니 깨끗이 먹으란다. 제법 많은데 쌀 한 톨도 버리면 쓰겠냐고 해서 먹었다. 꾸역꾸역 억지로 먹으니 너무 배가 불렀다. 남길까 하다가 굶주리던 옛날이 떠올라 끝까지 다 먹었다. 일어서니 배가 만삭이다.

집으로 와서 배가 고통을 호소하기에 소합원 30알을 먹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소화할 양만 먹어야 한다. 아깝다고 애들이 남긴 밥까지 억지로 먹고서 이게 무슨 탈인가. 어릴 때 가난해서 쌀밥이 귀했다. 무를 넣은 무밥이나 시래기밥, 꽁보리밥이나 고구마나, 좁쌀을 넣은 밥을 먹다가 하얀 쌀밥은 꿀맛이었다. 설에나 먹는 하얀 밥은 꿀맛이었다. 쌀 한 톨이 아까웠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밥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은 후에 마지막에 물을 부어서 마시는 티브이 영상도 한몫했다. 넘치면 탈이 나는 것이다. 아까워도 버려야 했다.

병은 마음 병과 몸의 병으로 나눈다. 마음 병은 지나친 고뇌에서 생기고 몸의 병은 과식과 과음과 과로로 생긴다. 음식으로 병이 나면 식원병(食源病)이다. 자기 몸에서 원하는 양의 7할만 먹으라는 의사도 있다. 소식해야 위가 상하지 않고 건강을 누린다. 이미 알면서도 과식하여 시달리니 내가 부끄럽고 어리석다.

지나친 쾌락은 몸을 해치고, 지나친 절제는 건강을 해친다.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란 게 좋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릎이 시리고 친구는 테니스 엘보로 팔을 상했다. 중용을 이탈했다. 컴퓨터로 5년간 법문 사경을 하다가 중단했다. 욕심을 부리고 성과를 내려 했다. 하루에 100단락을 쓴 적도 있다. 손목이 붓고 눈이 지쳤다. 객기가 도를 넘었다. 젊은이는 열 손가락인데 나는 두 손가락이다. 독수리는 도저히 번개를 따를 수 없다. 눈 늙고 손 무딘 세월이 청춘의 날렵함을 어찌 견주리오. 일곱 번이나 반복했으니 만족해야지. 더한들 무슨 아상(我相)을 세울까.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을 접었다. 과하다 싶으면 과감히 멈추어야 한다. 능력과 나이가 말리면 내려놓는 게 현명하다. 흥미도 과욕을 외면하고 주름진 심신도 말린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칠십 대 중턱이다. 남과 다투거나 욕심을 앞세울 나이가 아니다. 지난날을 지우고 앞날을 빌어야 한다. 비울 것은 비우고, 버릴 것은 버리고. 세파에 찌든 세월을 달래고 홀가분히 휴양하면서 삶을 정리할 나이다. 여생은 길지 않다. 과유불급을 가슴에 달고 중용의 도를 그리면서 해와 달에 나를 맡기자.

 

*논어(論語) 선진(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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