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용사는 고고학의 숲이 된다는 학설이 있다.
전쟁을 선창하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을까 그래도 카라얀의 팡파르를 싣고 메르스데스 벤츠는 신나게 달렸다 샤워하는 가스실로 침묵하는 초원으로
도요타의 가성비와 악수한 손길이 만주벌판에 세운 동상을 허물기도 하고 이웃이 건넨 독 묻은 사과에 하루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선창하는데
어쩌다 떨어진 사과 한 알이 허공에 푸른 숲 지구를 매달기도 하였지만, 무심코 마신 폭탄주 한 잔이면
사과밭이 붉은 낙과천지가 되리라는 학살도 있다.
-졸시「아주 쉬운 전쟁 1」전문 |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했다. 이 돌발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1918년 11월 18일 종전할 때까지 약4천만 명의 사상자가 났다. 사망자 수는 1천 6백만 명에서 2천만 명 정도이고, 부상당한 군인의 수는 약 2천 1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역사는 기록할 뿐 죽은 자나 죽인 자는 말이 없다. 총성 한 발이 빚은 참상은 엄청났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일본제국이 항복할 때까지 무려 6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5천 6백만 명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으나, 비공식적으로 7천 3백만 명 가량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네 배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이 통계는 “군사 Military-adipo.tistory.com”에서 인용함)
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이 정도라면 일반 민간인들의 삶은 어땠을까? 민간인이 당한 피해는 직접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희생과 견주어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막중한 피해를 입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두 편의 영상이 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전쟁과 한 여자>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전쟁 전후 일본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약육강식이 만연하여 극도로 혼란된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그러자니 정신 이상자들이 강간과 살육을 저지르며 온 사회가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일본의 전쟁광들은 맹목적 애국주의-쇼비니즘에 빠져 외국을 침공한다. 타국인들, 특히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학살을 놀음처럼 자행했다. 그러자니 자국민들의 삶인들 평안할 수 있었을까? 그럴 리 없었음을 이 영화는 섬뜩한 지옥도로 그려낸다.
다른 한 편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나치 독일 군인들이 폴란드를 점령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대대적으로 점령지를 관리할 수 있는 병력을 모집는데, 배관공, 이발사, 택시 운전사, 요리사, 자영업자 등이 자원하였다. 이들을 몇 개월 단기 훈련시켜서 점령지에 배치하였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들을 집단 총살하는 작업에 경찰관들이 동원되었다. 지휘관이 이 과업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나치의 만행이나,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는 그렇게 나서는 독일병사나 경찰관들을 겁쟁이라며 즉석에서 총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한 경찰관이 앞으로 나오니, 몇 사람이 뒤따라서 총살에 참여할 수 없다며 앞으로 나선다. 지휘관은 그들을 제외시킨 가운데 유대인 학살에 나섰다고 한다. 이것이 실상이었다고 다큐멘터리는 전한다. 한 마을에서, 혹은 도시에서 얼굴을 맞대거나 독일어가 통하는 독일인이었던 사람들을, 유대계라는 이유만으로 얼굴을 마주한 채 총을 쏠 수 없었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음을 전한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헤르바르트 폰 카라얀도 나치에 부역하였다고 한다. 두 번에 걸쳐 카라얀은 나치당에 입당하였으니, 당시 그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음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광이 날뛰는 미친 피바람을 그도 파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차로 부자들이 선호해 마지않는 포크스 바겐이나, 벤츠 자동차회사들도 나치의 전쟁무기를 만들고 그 무기들을 살육의 현장으로 실어 날랐다. 전후 이들 회사들은 사과를 하였다지만, 정작 사과를 받아야 할 무고한 희생자들은 말없는 숲으로 자랄 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독일차가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행간마다 겨레의 피로 물들이고 한반도를 노략질하던 ‘왜구[倭寇: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들은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과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사과 같은 것은 필요 없다며, 왜구의 후손들이 만든 도요타며 렉서스를 가성비를 따지며 열심히 사주는데, 저들이 뭐가 아쉬워 사과하겠는가.
염려스러운 것은 단 한 번도 한국인을 선린善隣해야 할 이웃으로 대한 적 없는 저들에게, 전쟁이 나면 함께 적을 물리치겠다며 동맹한다고 한다. ‘내편’-‘네편’이 헛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벌이고, 싸우다 죽은 건 젊은이들이다.” 그러니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던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론’이 그립다. 그러고 보면 ‘전쟁은 아주 쉽고, 평화는 엄청 어렵다’는 게 역사의 정설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