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기획재정부 재정사업 평가위원회가 전국의 신규투자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중 전북의 12개 사업 가운데 노을대교 사업이 포함됐다.
마침내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와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를 잇는 노을대교(부창대교) 사업에 정부가 투자할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노을대교 사업은 원래 부안과 고창의 바닷길을 잇는 교량으로 '부창(扶敞)대교'라는 이름으로 사업 신청이 이어졌으나 경제성이 적다는 이유로 번번이 예타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부안군이 아름다운 서해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형 다리가 될 것이라며 명칭을 ‘노을대교’로 변경하고 교통뿐 아니라 관광산업 발전 효과를 내세우며 사업 타당성을 주장했다.
아울러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 가중치 항목에 지역 균형발전 비중이 높아져 마침내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이를 놓고 지역 정치권에서는 지역민의 30년 숙원사업을 해결했다고 호들갑을 떨며 정치권 인물들이 노을대교 예타 통과에 저마다 공로자라고 숟가락을 얹고 있다.
부안과 고창군수가 이 일에 매달린 일은 특별한 공로라기보다 당연한 일이다. 두 지역 간 거리가 좁혀지는 것만 아니라, 나름 이름이 난 두 관광지가 바로 이웃처럼 쉽게 오 갈 수 있게 되는 건 지역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다리가 완성된 뒤에 양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근 전북연구원은 적어도 3배 이상의 경제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전북연구원은 “노을대교는 관광형 SOC사업으로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고창군과 부안군의 일자리 창출, 통행시간 개선, 공공 및 민간 서비스 향상, 정주여건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 균형 발전 등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도 77호선은 충남 태안반도 거점 관광지와 새만금의 고군산군도, 변산국립공원, 고창 선운산도립공원, 노을대교, 유네스코 고창갯벌을 거쳐 전남 목포까지 이어지는 초광역 관광권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경기도 파주에서 시작해 서해안과 남해안을 돌아 부산까지 이어지는 77호선 국도에서 유일하게 끊어져 있던 이곳에 다리가 놓이는 노을대교 사업은 그동안 전라북도가 얼마나 뒤처진 지역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도 가운데 30년 넘게 다리가 없어서 단절되어 있던 곳은 없었다. 지역 경제력이 미미해서 다리가 놓여도 경제적 이득이 없다는 판단이 20년 넘게 거듭되어 온 부끄러운 흔적이 바로 노을대교 사업이다.
전북은 경제력만 없는 게 아니라 지역정치권의 힘도 미미했기에 기재부 등 정부에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예타 통과가 발표되자 저마다 자신의 힘으로 다리를 건설하게 된 것인 듯 생색을 낸다.
고창과 부안 두 지역 군수들이 애를 쓴 건 당연한 일이고 지역 국회의원, 도지사, 민주당 전북도당, 그리고 민주당 이낙연 대선예비후보까지 저마다 일등 공신을 자처했다.
이낙연 예비후보는 이미 예타 통과가 매듭지어졌을 무렵인 지난 8월 14일에 고창 현지에 내려와서 기재부 예타 통과를 이루겠다고 립서비스로 약속을 했다.
송하진 도지사 또한 자신이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부안과 고창 주민의 이동 강화를 위해 대교 건설을 처음으로 기획하고 건설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고 생색을 냈다.
송 지사는 새만금 미래수요를 반영한 이동량 조사를 통해 경제성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회의원과 정치권 등과 공조해 마침내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라며 “지난 20년간의 도전에도 변함없는 신뢰와 응원을 보내주신 도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생색이다.
이런 노을대교 예타 통과 발표와 그에 따른 정치권 등의 반응을 보며 필자는 퍽 마음이 불편했다. 전남지역의 경우 이미 크고 작은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를 여럿 놓았다.
전남 신안군에 건설된 연육교를 보면 부안과 고창을 잇는 다리보다 경제성이 낮다는 것은 현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짐작할 수 있다. 신안군이 자랑하는 천사대교의 경우 이미 10년 전에 공사를 시작해 올해 개통했다.
전남 ‧ 광주지역은 전북보다도 지리적으로 서울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전북에 있던 기관들을 모두 가져갔다. 집요하게 덤비는 그쪽 정치권의 힘에 눌려 전북은 광주ㆍ전남에 쓸 만한 기관은 다 빼앗기고 내주었다.
그렇게 힘없이 광주ㆍ전남에 각종 기관들을 내준 사람들이 고작 노을대교 예타 통과가 무슨 살판이라도 난 것인 듯 호들갑을 떨며 저마다 내가 힘을 쓴 덕분이라고 생색을 열두 발이나 낸다.
그저 다른 지역에서는 흔하디흔한 다리 하나 놓을 수 있게 된 것인데 이 야단을 떠는지 알 수 없다. 마치 노을대교가 완성되면 전북발전이 크게 이뤄지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말을 한다면, “저희 정치권이 무능해서 이제야 국도 77호선 단절부분을 잇게 되어 죄송합니다.”라고 머리 숙여 사죄해야 맞다. 제 목소리를 냈더라면 적어도 10년 전에 이런 예타통과 결정이 나왔어야 했다.
노을대교 예타 호들갑은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젠 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걱정하고 의견들을 모아야 한다.
물론 앞으로 국토부가 제5차 국도 ‧ 국지도 5개년 계획에 노을대교 사업을 반영해야 하고 이어 국토부의 타당성 조사, 총 사업비 산정, 전략환경영향 평가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일괄예타를 통과했으니 국토부의 절차는 당연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만만한 전북의 일이니 또 무슨 트집거리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어서 국토부 과정이 끝나더라도 예산확보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새만금사업처럼 찔끔찔끔 우는 아이 달래듯 예산을 주며 질질 끌어갈지 알 수 없다.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2030년으로 미루어지듯 노을대교 또한 차기 정권에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너무 많이 당해서 손에 쥐어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습성이 생긴 탓인지 모든 것이 불안하다.
요란하게 떠들고 생색낸 사업 치고 제대로 돌아간 일이 없었다. 어물어물 표나 줍겠다는 생각으로 수저를 얹는 정치권과 지역 단체장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헛생색 그만두고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끝맺는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