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국경을 초월한 영혼의 노래다”
“시는 국경을 초월한 영혼의 노래다”
  • 김규원
  • 승인 2024.10.21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상수상詩想隨想 -82

 

고독한 일본, “친구를 빌려드립니다

한국 일간지의 보도문을 봤을 때,

시인, 당신이 보였습니다

 

그 이웃으로는 영원히 善隣友好로 다리를 놓을 수

없다, 내가 고집할 때 바로 그때도

지성인, 당신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의 시집 피에타Pieta*에 들었을 때

그 고개 숙인 집 낮은 출입문을 열었을, 그때

세계인, 당신을 보았습니다

 

내 육신의 눈으로 보였던 당신에게

내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당신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은

당신의 고독이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죄는

당신의 죽음을 퇴고할 수 없다*, 했듯이

같은 길에서 죽음의 육신을 퇴고할 수 없어

차가운 외로움과

무서운 미움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저 노래

 

무궁화 환상-, 가야금 환상-*을 듣자

나보다 더 나를 슬퍼한 당신의 노래는, 비로소

길고 먼 다리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서 나의 시가 되는 순간부터

녹을 줄 모르던 나의 고독이

잠긴 사슬을 풀고 나를 풀어주었습니다

 

*혼다 히사시의 시집 <피에타 Pieta>에서

 

졸시일본, 일본인-혼다 히사시<本多壽>시집 <피에타 Pieta>를 읽고

-전문

언젠가는 이런 시를 쓰리라, 내심으로 작정했던 바를 시라는 형식으로 얽으려 하니 참 막막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이 책을 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을 그리면 되리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요즘에도 버리지 못하는 입버릇이지만, 일본 사람을 지칭할 때는 꼭 ‘~이라는 접미사를 붙이고는 한다. 또한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일본 극우인사들이 혐한嫌恨 시위를 한다거나, 독도가 저네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급기야 일본 초등학교 시험 문제에까지 저네들 땅 독도[다께시마]를 강점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드러내놓고 그랬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영원히 선린우호善隣友好의 이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일전에 고희를 넘기신 문예반 회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의 동생이 일본인 며느리를 보았다고 한다. 형제자매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일본 놈들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좌중의 누구도 그 언사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일본여인을 며느리로 본 동생이 파르르 성을 내며 나섰다는 것이다. “아니, 언니는 어쩌면 나를 앞에 두고 그렇게 험하게 말할 수가 있어요? 내 며느리가 일본인인데, 그렇게 하대하면 내가 듣기 좋겠어요?” 하더라는 것이다. 모두들 잠시 뻘쭉했지만,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이후로는 발언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었던 적이 있다.

 

이처럼 한일 간에 오랜 세월 깊고 짙은 트라우마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 상처를 지우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본인들이나, 이런 작태에 항의하기는커녕 그들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한국의 정치인이나,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의 왜곡된 견해를 만날 때마다 일본 놈친일파가 입에서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한 일본 시인의 시집을 우연히 목격하고는 이런 생각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훌륭한 문학작품이 지니는 일반적 특성으로 항구성恒久性과 보편성普遍性을 꼽는다. 어느 나라 문인의 작품이건 제 나라의 영광과 제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웃 나라와 민족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것은 문학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 일본, 일본인들에게 훌륭한 작품은 세계 어느 나라나 민족에게도 훌륭한 작품이어야 한다. 일본인의 문학작품이 세계인의 선호와 기림을 받을지라도 한국인들에게 그렇지 못한다면, 항구성과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일본 시인이 한국-한국인의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고 옹호하며 인류애로 무장한 시를 목격하면서, “아하, 역시 문학의 힘은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진즉부터 익힌 문학의 항구성과 보편성이라는 특성에 대하여 재확인하게 되었다.

 

혼다 히사시의 시집 <피에타>에는 이런 시들이 실려 있다. “나는 무궁화가 피는 길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말없이 걷는다/ 따끔따끔 통증이 이는 발을 어루만지며 걷는다/ 가슴의 동통疼痛을 쓰다듬으며 걷는다무궁화 환상이라는 작품의 결구다. 또한 이런 구절도 발견할 수 있다. “여인이여 언젠가/ 가야금으로 변신해 버린 여인이여/ 나는 그대를 안고/ 애도哀悼의 여행에 나서리라/ 그리고 낙동가 가를 찾아가리라/ 고향에 도착하면/ 푸른 오동나무 밑둥치에/ 그대를 묻어주리라가야금 환상이라는 작품의 4연 중 끝 연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아픔을 이해하고, 이민족이 겪은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의 이면에서 숨 쉬고 있는 민족의 한과 문화적 전통을 아우르는 인식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혼다 히사시는 시인이자, 지성인이자, 세계인의 안목으로 한민족의 역사적 아픔과 안으로 쌓인 의 정서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것이 위로의 것이든, 공감의 차원이든, 이런 정도의 인식 수준이라면, 일본, 일본인을 굳이 ‘~이라며 하대하려 했던 내 인식 수준이 얼마나 옹졸했던가를 돌아보게 한다. 역시 시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가 공유하는 영혼의 노래임이 분명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