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이 불 지피는 변화의 조짐
노벨문학상이 불 지피는 변화의 조짐
  • 김규원
  • 승인 2024.10.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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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10일 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소설가 한 강(54)을 선정해 발표했다. 동양권에서 여자로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더구나 나이도 많지 않은 여성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이런 일은 없었다.

스웨던 아카데미는 한 강 작가를 수상자로 결정한 이유를 인간의 조건을 단호하게 분석하고, 고통과 회복력, 도덕적 성찰을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묘사를 제공하는 심오하고 명상적인 산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글에는 감정적 깊이와 실존적 질문이 가득한 데 대한 찬사다.

한국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계층 간 갈등과 인간에 대한 잔인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확연히 드러낸 작품 속에서 그녀는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한 문학적 성취는 나이와 국적을 넘어 세계인의 감동을 불러왔다.

그러한 문학적 성취에 대하여 그동안 세계 각국과 우리나라에서 여러 문학상으로 축하와 감동을 전해왔었다. 2016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2017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채식주위자로 스페인 산타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어문학상과 올해 초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받는 등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수상 소감을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라는 말과 함께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미친 여러 작가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에게 영감을 줬다.”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리고 수상 소감은 노벨상 수상식장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에 윤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이 한꺼번에 축하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모두 축전을 보내 수상을 축하했다. 그의 작품에 어깃장을 놓던 집단마저 온갖 축하의 뜻을 전했지만, 정작 한 강 소설가는 방송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진심으로 수상을 축하한다라며 "작가님께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한국 문학의 가치를 높이신 작가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축하를 전했다.

윤 대통령에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과 대변인, 유인촌 문체부 장관도 노벨상 수상을 축하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이 경사에 말을 보태며 축하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2014년에는 한 강 작가에 대한 세종 도서 지원심사에서 탈락시키기도 했다.

오마이 뉴스는 보수 정부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은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숟가락을 얹으려 하기 전에, 문화예술계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탄압을 가한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게 먼저다. 바로 그게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예의와 염치다.”라고 지적했다.

한 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등은 지난날 표현을 빌리자면 금서(禁書)’에 가깝다고 할 만큼 꺼리는 책이었던 셈이다. 광주 5.18과 제주 4.3 사건 등 권력에 맞서 희생된 이들의 시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지금 이 정권에서는 퍽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한 작가의 책이 불티나듯 팔리고 있다. 책 재고가 없어서 인쇄 중이고 독자들이 책을 사기 위해 입금하고 이번 주중에 책을 받게 된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책이 베스트 셀러로 변하여 온 국민에게 퍼지는 현상은 이 정권이 바라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람없는 정권에 대들었던 민중의 마음이 전해지고 파급되는 일이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이 그들의 소망을 거두어버린 셈이 되었다.

한 강 소설가가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폭력으로 인하여 아픔을 겪는 이들이 수없이 던지는 질문과 성찰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의 존재와 서로의 관계를 탐구한다. 특유의 셈세하고 시적인 문체로 그려내는 메시지는 깊은 사유를 불러낸다.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그 경계가 지극히 모호하고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밀접한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죽음은 사라지는 듯 보여도 다른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도 일러준다.

마구잡이 정권이 저질러 온 폭력적 권력 행태에 순치(馴致)되어 무감각하던 국민의 감성에 이제 새로운 불길이 번질 참이다. 그동안 얼마나 무모하고 일방적인 폭력 정치가 이어졌는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억누르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정치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한 강의 문학을 통하여 부당함을 실감하고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이 나라는 또 한 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힘은 폭력적이지 않지만, 근본을 흔들어 내일을 보게 한다.

적어도 책을 읽은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작가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로 인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밝아지고 변하는 과정이 조금씩, 차근차근 시작될 수 있다.

문학을 통하여 근본을 새롭게 인식하고 인간성 회복과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적어도 수십만 권의 좋은 책이 세상에 쏟아지고 읽히면서 여러 곳에서 조금은 깨끗해지고 달라질 수 있다는 데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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