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투표가 끝났다. 잠정 집계 전국 투표율은 67.0%, 지난 21대 총선보다 0.8% 높은 투표율이다. 이어서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민주 178~196석, 국힘 87~105석으로 범야권과 합하면 개헌선을 넘는 결과도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여당은 지난 3월 초 갈 곳 없는(?) 민심이 방황하던 시기의 국민 여론이 아직도 자당에 머물고 있다는 착각 속에 방만한 자세로 곳곳에서 말실수를 거듭하며 뒤처진 판세를 더욱 짓눌렀다는 평가다. 판세를 불리하게 이끈 주역은 윤 대통령이었다.
출구조사 결과여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여소 야대 국회로 굳어진 가운데 야권의 개헌선 확보라는 커다란 정치 변수가 등장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만들어 준 유권자들은 그동안 정권이 무리수를 자행할 때마다 자책을 거듭해 왔다.
유권자들은 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통령의 무조건적 일방통행에 기가 질렸다. 어떤 이는 “투표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라고 자책하는 모습도 보였다. 숱한 실수와 오류가 드러나도 사과 한 번 하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국민이 일을 맡긴 상머슴이 아니라,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듯 보이는 태도에 실망했던 이들에게 이번 총선은 지난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분풀이 기회였을 듯하다. 이러한 국민의 답답하고 속 터지는 심사가 총선 결과에 드러난 것이다.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들이 요직에 중용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반대 의사가 전달되었지만, 번번이 무시되었다. 더불어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도 여당과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여 국회에 되돌려 보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2년 미만 동안 8건의 거부권을 행사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대선 득표율 0.76%가 많아 당선했지만, 지지율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어진 권한을 행사했다.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만들면서 그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조차 없다.
159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에도 제대로 책임지는 정부 관계자는 없었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황급히 보냈다가 선거 여론을 의식해 불러들였다가 끝내 해임했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의 불만이 쌓여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는 긍정 여론 은 30%대에 머물렀고 부정적 여론은 55%에서 60% 초반을 나타냈다. 이런 여론 동향에도 대통령실과 정부는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몇 번에 걸친 특별사면으로 자신이 구형하여 형을 선고받은 중요 사범들을 포함한 죄인들을 대통령의 권한으로 풀어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판사가 선고한 선고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특별사면하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서게 했다가 참패한 일도 있다.
국민 여론을 전혀 개의치 않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국민은 실망하고 분노했다. 이런 정치는 뚝심이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선출직 공무원은 당선으로 끝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늘 헤아리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도 유권자들이 반대하면 시행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는 게 바른 태도일 것이다. 왜냐면 선거는 무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일이지 왕을 뽑아 이끌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법을 집행하는 부분에서도 공정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판에 태풍을 몰고 온 조국혁신당 조 대표의 경우 자신을 비롯한 부인과 딸까지 완벽하게 탈탈 털리면서 부인은 감옥에 가고 딸은 학위와 면허를 모두 잃는 참사를 겪었다.
반면 윤 대통령은 부인의 논문 등 자잘한 의혹은 차치하고 주가 조작 관련설과 양평 땅 문제 등 의혹에 관한 국회 특별 조사를 거부하고 처가와 관련한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궁금해하는 일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워 선거에서 당선했지만, 국정을 처리하는 방식은 오로지 ‘내 맘대로’, 마이웨이로 일관했다. 모든 잘못된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해명이나 설명이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과거 정권이 잘못한 일로 정리됐다.
옛이야기 가운데 ‘바담 푸’라는 이야기가 있다. 혀가 짧은 서당 훈장님이 ‘바람 풍(風)’자를 가르치는 데 혀가 짧으니 ‘바담 푸’라고 가르쳤다. 배우는 아이도 ‘바담 푸’라고 라고 따라했다. 그러자 “이놈아 내가 ‘바담 푸’해도 너는 ‘바담 푸’해라”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다.
혀 짧은 훈장님이 아무리 해도 ‘바람 풍’을 말할 수 없듯이 원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만큼 밖에 나타내지 못한다. 국민 앞에 ‘공정과 상식’을 내걸어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공정과 상식은 ‘바담 푸’처럼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투표가 마감되면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앞에 적시한 내용대로 여당의 참패다. 윤 대통령은 불리한 여론 속에서도 갖가지 문제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특히 윤 대통령의 이종섭 대사 임명,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등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문제를 불러왔다.
여당의 이번 총선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말을 아끼고 참아 온 국민의 분노를 읽지 못한 여권의 허술한 판단에 있다고 본다. 그 숱한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만만해 보이는 야당만 성토하면 국민이 따라 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여권 일부에서 지적하듯 아무래도 이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은 윤 대통령인 듯하다. 입틀막 정치에 대파 가격, 이종섭 대사 임명까지 무엇하나 국민의 눈에 들지 못한 막무가내 정치가 최종 개표 결과에서 어떤 결말을 낼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