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뜬금없이
  • 전주일보
  • 승인 2024.03.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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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고등학교 때 여름방학 끝나고 전주에 왔더니 다가산, 전주천 휘어 도는데 거기에 표지판 세웠더라구. 「이곳은 수심이 깊어 물놀이 위험 금지」라고.” “한벽당에서 평상에 앉아 오모가리탕 먹던 게 엊그제 같은디, 이제 넘의 동네 이야기되어 버렸네.” “날마다 다가교에서 한벽당까지 걷는데 뜬금없이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다 비어 버렸던디요.”

몇몇 지인들 저녁 자리에서 최근 전주천 이야기로 목소리가 커진다. 1차 자리에서 마무리되지 않아 찻집까지 옮겨갔다. 여전히 화제는 전주천과 삼천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주시 성토장. 시간이 늦어 정리했지만, 상당히 격한 분위기까지 오갔다. 지면으로 옮기기에는 팩트 확인 절차가 필요한 이야기도 나왔다.

“전주시는 치수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하천의 장애 수목 및 퇴적토 제거, 전주천 국가하천 승격 등 안전한 하천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시민 안전을 위한 치수를 최우선으로 하고, 전주천과 삼천 일대를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수변 힐링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지난달 6일, 전주시장은 전주천 둔치에서 발표했다. 오는 2030년까지 국비 4천421억원과 지방비 2천664억원 등 전체 7천85억원을 투입한다.

”시민의 참여로 자연성 회복을 이뤄낸 전주천을 이전으로 돌리려는 계획“이라며 ”홍수 방지 효과가 없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프로젝트를 즉각 중단하라.“고 시민·환경단체들은 촉구했다. 하천 둔치에 편의시설과 체육시설 등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면 습지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 김완주 민선 시정 초. 전주천 둔치에 유채밭을 가꾸어 시민들이 환호했다. 노란 유채꽃을 즐기기 위해 인파가 쏟아졌다. 그러나 곧바로 몇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유채꽃이 진 후, 수질오염과 사후관리 그리고 시멘트 블록 호안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듬해 시는 바로 발 빠르게 자연친화형 하천으로 돌려놓았다. 지금의 전주천이다.

멸종위기인 ’수달이 카메라에 잡혔다‘고 지역 방송과 신문에 화제로 떠올랐다. 삵도 발견되었고, 족제비도 천연기념물인 원앙도 찾아오게 되었다. 자연친화형 하천 복원으로 전국에 모범사례로 소개되었다. 한벽당 앞 전주천에는 자연스레 수풀이 만들어졌다. 물 머무는 곳곳이 버드나무가 자라고 습지도 여러 군데 형성되었다. 시민들은 전주천을 걷고 즐긴다.

하지만 전주시의 이번 ’명품하천365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오는 10월 1일 국가하천 승격·확장이다. 지방하천은 도비로만 하천을 관리한다. 반면에 국가하천은 환경부에서 관리한다. 정비와 유지 관리하는데 전액 국비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2030년까지 국비 4천여억 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지방비를 아끼고, 국비 4천여억 원이 투입된다는 프로젝트가 고작 20여 년 전에 폐기했던 ’콘크리트 전주천‘ 복원이다. 시민들은 전주시의 안일하고 무계획적인 ’복사(copy)프로젝트‘에 ’뜬금없이∼‘라는 말을 하고 나섰다.

「버드나무 학살자, 너의 이름은 우범기」 시민단체 시위대 푯말이다. 이 정도면 전주시의 무지(無知)시정, 불통(不通)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비등점에 왔다. ”쭉쭉 늘어진 토종 버드나무였는 게 벼. 얼마나 좋았는지. 근디 올해부터는 못보네.“ ”대체 뭔지 모르것수, 그것도 새벽에 모르게 잘라 버렸응게. 웃기는 일이지.“ 한벽교 앞, 남천교 버드나무 260그루를 물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싹둑 잘라버렸다. 대책없다. 정말 뜬금없이 시민들은 당했다. 

’뜬금없이‘. ’갑작스럽고도 엉뚱하게‘로 뜻풀이된다. 뜬금은 옛날 곡물시장에서 가격을 정하던 방법에서 나왔다. 쌀의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고 시세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 값이 매겨졌다. 거래에 기준이 되는 가격이 뜬금이다. 그러니까 일정하지 않고 시세에 따라 달라지는 값이다. 그래서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뜬금없이‘ 이다. 지금 전주시 행정이다. 시민들이 묻는다. ”뜬금없이 무슨 일을 벌린 거여?“

수년 전 전북의 한 지자체는 아무런 명분도, 연유도 없이 뜬금없이 ’가위박물관‘을 만들어 한바탕 곤혹을 치뤘다. ”근데 마이산이 암수 두 봉우리라 가위박물관이 들어섰나요?“ 관광객의 농담기 섞인 질문이다. 또 다른 지자체 역시, 경각산 자락에 ’술테마박물관‘을 지었다. 텅 빈 주차장에, 하루 몇 명이나 찾는지? 의문이다.

충북 한 지자체. 기네스북에 등재하려고 세계 최대의 가마솥을 만들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솥으로 헛웃음을 선사했다. 또 남해안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거북선을 건조했다. 훗날 방송에 나온 철거 영상은 뜬금없는 지방행정의 묘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전주천과 삼천은 하천관리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아 온 곳이여∼. 기후 위기 시대 탁상행정 콘크리트 사업으로 명품 하천을 만들겠다? 한마디로 ’뜬금없이 365프로젝트‘지“ 그날 찻집 마무리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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