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43일 앞으로 바짝 다가서 있다. 사전투표일인 4월 5일과 6일을 계상하면 40일도 남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도 전북의 경우는 아직 선거구 획정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 어디서 출마할지 모르는 지역이 상당하다.
전주시와 익산, 군산 지역만 선거구 변동이 없고 나머지 시군은 기존 4개 선거구로 진행될지, 1석이 줄어든 3개 선거구로 선거가 치러질지 오리무중이다. 29일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중앙선관위 획정 안대로 선거가 치러질 전망이 우세하다.
사실 중앙선관위가 헌법에서 명시한 인구수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안을 만들었지만, 인구 문제는 전북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독 전북의 선거구를 줄여 경기도 지역에 선거구를 늘리려는 건 야당 당선자를 줄이려는 여당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일을 두고 27일에도 여야가 만났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전북 의석수는 9석으로 확정될 전망이다. 이렇게 40일 남은 선거에 선거구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인데 지역 언론만 이러쿵저러쿵 소식을 전할 뿐, 전북 유권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전북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전북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은 선택이 아닌 일정한 ‘흐름’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지난 시절, 전북의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 독식의 폐해를 인식하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했다. 나름 그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비롯해 상식 밖의 각종 정책, 대통령 거부권 남용 등 현 정권의 실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에서 치러진다.
당연히 윤 정권을 심판하는 구도다. 특히 전북의 유권자들은 새만금 잼버리를 구실로 전북 예산이 잘려 나간 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일 행사장에서 현직 의원 입틀막 사건, 공무원연금공단 전북지부 광주 이전 등 불만이 크게 고조된 상황이어서 더욱더 선택지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전북도 이번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에 편향적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역부족이다. 결국에는 이번 선거도 전북의 표심은 지난 선거처럼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동안 전북은 누가 뭐래도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웠다. ‘막대기만 세워놔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민주당(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결코 민주당이 예뻐서 표를 준 건 아니다. 여야를 떠나 정서가 다른 정당에 표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북은 늘 ‘녹두밭 윗머리’로 지목돼 무엇을 심어도 자라지 못하는 땅으로 치부돼 중앙권력의 관심 밖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60년 세월이 흐르면서(산업화 과정) 전북은 철저히 외면됐다. 이 바람에 중앙정부 중요 부서에 전북 출신은 성장할 수 없었다. 간혹 한두 명 중앙부처에 끼어있어도 그들의 속마음 또한 전북인이 아니었다.
그나마 어쩌다 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숨어있던 ‘밴댕이 속’ 근성이 튀어나와 헐뜯고 할퀴어 자라지 못하게 우듬지를 잘랐다. 다른 지역에서는 내 고향 인물이니 아는 흠도 감추어 덮어주며 두둔하여 큰 인물로 자라게 하는 사례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큰 사람이 없으니 나무 그늘이 되어주지 못하고 그늘이 없으니, 인물이 자라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이런 성향이 최근에 이르러 반성하고 뒤돌아보면서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북에서 인물이 자라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치른다. 후보로 등록하고 예비선거 운동에 돌입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오죽하면 전주병 정동영 예비후보를 비롯해 익산 이춘석, 정읍 유성엽 의원 등 이른바 올드보이 후보들이 가장 경쟁력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전북은 민주당 공천 단계에서 선거가 거의 마무리된다. 특별히 지역에 공로가 많은 인물이 당선하기도 하지만, 퍽 드문 일이다. 시민들이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판단할 때 어쩌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도민들은 선택권을 잃고 정치 성향은 고착화하여 수십 년이 흘렀다. 더구나 이번 총선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과연 얼마나 표심으로 발현할지 기대와 걱정이 함께 하는 선거다. 짐작해 보면 이번 선거도 전북에서는 과거를 답습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 경선 승리가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퍽 재미없는 선거가 재현되리라는 것은 이 지역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참정권이 보장된 선거구는 전주시을 선거구다. 이 지역은 민주당 경선 후보가 5명이다. 이 지역만큼은 민주당 경선에 승리해 공천을 손에 쥐어도 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을 점칠 수 없다.
본선 후보 가운데에는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국민의힘 정운천 현역 국회의원이 민주당 후보와 한판 대결을 펼칠 예정이어서 유권자들의 참정권이 조금은 보장된 선거구다.
즉 유권자의 판단에 따라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선거구라는 말이다. 솔직히 다른 지역은 볼 것도 없이 민주당 후보가 당선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시 말하면 전주을 지역을 제외하면 유권자의 선택권이 상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의 총선이 이처럼 재미없는 선거로 변한 건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오랜 야당 텃밭이라는 전통이 민주당에 표를 주는 현상으로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대구와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이른바 영남지역 또한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지역정서가 형성됐다.
여기에 충청과 강원 또한 언제부터인가 특정 정당에 몰표를 몰아주는 일이 허다했다. 모두가 정치권의 잘못된 선거전략에서 나온 기현상(奇現象)이다.
그동안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에서 숱하게 지적하고 합리적 여론을 형성하려 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살면서 홀대와 차별을 체험한 세대의 가슴에 쌓인 깊은 한(恨)인지도 모른다.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