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 내내 만났던 이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이 무도한 정권에 대한 응징이었다.
두 달 앞으로 바짝 다가선 총선에서는 이 정권을 심판할 호기다. 하지만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마음은 필자뿐일까.
설날 아침, 공영방송인 KBS는 차례를 지내는 시간대에 윤 대통령의 신년 대담을 재방송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설날 아침 황금시간대에는 가족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방송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신년 대담 방송을 재탕해서 내보내는 것을 보니, 억지로 KBS 사장단을 교체한 효과(?)가 여실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날 전두환 시절에 ‘땡 전 뉴스’에 지겨워하던 나쁜 추억을 80년대를 경험한 세대는 모두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들어 KBS 또한 ‘땡 윤 뉴스’로 시작한다. 더러운 역사는 이렇게 되풀이해야 하는지 신의 섭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 대담에서 박장범 앵커라던가? 명품 가방이라는 표현 대신 ‘작은 파우치’라고 에둘러 질문하고 윤 대통령은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에게도 박절하게 대하긴 어렵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대통령의 답변은 도대체 진정한 속뜻을 알 수 없다. 소위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는 대통령과 질문자의 대담이었다. 그 방송을 몇 명이나 보았는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필자 같은 시청자 외에는 대단한 지지자이거나 참을성 많은 사람이었을 듯하다.
과연 대통령이 본인의 말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웠다’라면 그동안 이태원 참사 피해 유가족들에겐 왜 그리도 매정했을까? 해병대 채상병 가족과 수사를 지휘한 박 대령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을까? 그저 시시때때로 말맞추기로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 속을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심사다.
이런 대통령과 그에게 찍소리 한 번 못 하고 숨죽여 총선 공천 은혜를 기다리는 기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그렇게도 권력에 오금을 못 펴는 가엾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야당이던 시절에 그렇게도 입에 거품을 물며 대들었다니…
벌써 국민의힘 내부에선 중요 인사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김성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를 지냈고 현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인 그가 공천 신청에서 부적격으로 탈락하자 “죽을 각오로 당 안에서 싸울 것”이라며 ‘짜고 치는 공천기획설’을 해명하라고 나섰다.
지금껏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독재정권도 이처럼 국민 앞에 무례하지 않았다. 실수는 물론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 한차례 없다. 대통령 장모와 처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사건은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덮고 넘어가 버렸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도 사실관계가 분명한데도 ‘매정하게 대하지 못한 일’로 끝내려고 한다. 우군이 될 사람들은 모두 사면으로 풀어주고 반대편에 서 있거나 설 사람들은 풀지 않았다.
법원의 판단은 형식에 불과했다. 대법원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해 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하는 거만을 떨었다. 그리고 참패하고서야 조금 변하는 듯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들어 서울, 경기도 용인, 고양, 수원, 의정부 등 수도권 민생토론회라는 명분으로 선심성 지역 공약을 흩뿌리고 있다. 호남지역을 제외한 전국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13일에는 “부산을 남부권 중심축이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2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3월 중순께까지 민생 토론 명분으로 영남지역과 충남지역을 순회할 방침이라고 한다.
총선이 임박한 시기에 대통령이 주요 부처 장관들을 대동하고 지역 맞춤 공약을 쏟아내는 일은 공명선거를 해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각지를 돌며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며 민심 달래기를 강행한다. 그야말로 무소불위다.
이번 총선은 언급한 것처럼 이 한심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하게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2중대 정당으로 의심되는 개혁신당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민주당을 박차고 나간 세력과 합당했다.
개혁신당의 옷 색깔을 보면 거의 붉은색에 가까운 주황색이다, 절대로 붉은색과 멀어질 수 없는 그들의 본심을 색으로 나타냈다. 그들이 윤 정권을 비난하는 모습은 마치 각본을 사전에 조율한 약속된 겨루기를 보는 듯하다.
총선에서 그들은 목적한 만큼은 아니어도 일부 의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속셈이 들통나지 않는다면. 그러나 그들의 합체에는 상당한 장애 요소가 숨어 있다. 양쪽이 모두 대단한 기회주의자 집단이어서 잇속을 사이에 두면 갈등이 폭발할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개혁신당은 겉만 야당일뿐, 속내는 국민의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개혁신당은 윤 정권을 비호하는 가짜 야당으로 진단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체성이 애매한 집단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성 싶다.
오는 4월 총선은 어지러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매우 중대한 선거다. 따라서 마구잡이 정권의 폭주를 막는 길은 가짜 야당이 아닌 진짜 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방법뿐이다. 재임 기간 1년 8개월에 국회가 의결한 입법을 9차례나 재의결(거부권)을 행사하는 폭주는 막아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의 독주를 막으려면 가짜 야당이 아닌 진짜 야당이 201석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가 재의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야당 단독으로 탄핵 소추도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국민이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야당끼리 대결하지 않고 서로 도와야 한다. 대한민국 총선은 ‘병립과 연동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은 연동형, 17석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하는 제도다.
이 중 30석의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산출하는 방법을 지면에서 낱낱이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단 지역구 253석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가장 많은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일사불란한 투표가 관건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은 야당의 분란을 기대하고 야당은 여당의 헛발질을 기회로 삼아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이전투구를 벌일것은 자명하다. 여기에 유권자들이 부회뇌동(附和雷同)해서는 절대 안된다.
유권자들은 복잡한 계산에 앞서 어지럽고 무지한 정치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할지를 선택하면 된다. 불과 1년 8개여월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그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조율한 행태를 살펴보고 느낀 대로 선택하면 된다.
오늘의 세계 정세는 대단히 불안정하다. 이런 때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국민이 함께 마음을 모아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짧은 경험에 기분대로 내지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권력은 지극히 위험하다. 그 힘을 억제하는 방법은 오로지 유권자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