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마저 잠든 밤에는 나를 지키는 부엉이가 지붕을 노크하지 틱 ! 틱 ! 톡 ! 톡 ! 탁 ! 탁 ! 한 획 한 획 심장으로 시를 쓰다가 까무룩 젖어드는 한여름 밤의 연주 무궁동無窮動 쏟아지는 박수갈채 ! 음표 ! 음표 ! 흥건히 젖은 음표들 ! 불면을 재우는 앙코르 곡을 청하며 별을 지운 밤을 무대로 부엉이와 더불어 협주곡을 듣지
-졸시「빗소리」전문 |
별마저 잠든 밤에는
나를 지키는 부엉이가 지붕을 노크하지
틱 ! 틱 ! 톡 ! 톡 ! 탁 ! 탁 !
한 획 한 획 심장으로 시를 쓰다가
까무룩 젖어드는 한여름 밤의 연주
무궁동無窮動 쏟아지는 박수갈채 !
음표 ! 음표 ! 흥건히 젖은 음표들 !
불면을 재우는 앙코르 곡을 청하며
별을 지운 밤을 무대로
부엉이와 더불어 협주곡을 듣지
-졸시「빗소리」전문
여름에는 장마가 있어야 한다. 벼를 주 작물로 하는 농경사회는 고온다습한 기후가 제격이다. 장마가 계속되더라도 틈틈이 햇볕이 나기도 하여 벼를 키운다. 옛말에 ‘칠 년 가뭄에 비 오지 않는 날 없고, 칠 년 장마에 해 뜨지 않는 날 없다’고 하였다. 한여름 장맛비에 고온다습한 기후가 조성되어 벼는 무럭무럭 자란다.
이런 날씨에도 농부들은 도롱이를 걸치고 물꼬를 보러 들녘으로 나갔으며, 아낙들은 밭작물의 상태를 살피러 밭으로 나갔다. 비가 온다고 농사일은 쉬지 못한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은 도시근로자들에게나 소용되는 새로운 속어가 되었다.
장마 중에 찾아오는 소나기를 들녘의 원두막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스펙터클 파노라마 장면이 될 것이다. 도시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보는 장면은 족탈불급[足脫不及: 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함]이다. 원두막에 앉아 있으면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어온다. 그러면 저 남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며, 무슨 거대하게 드리운 커튼이나 장막이 들녘을 휩쓸고 지나가며 장대비를 쏟아붓는다.
변화무쌍한 대자연이 연출하는 장면은 장관이다. 오감을 자극하며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여름의 곡식들은 즐거운 몸짓으로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부풀리며 계절의 혜택을 구가한다. 오감이 즐거운 이런 장면을 어떻게 좁아터진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겠는가! 언감생심이다. 시골의 장마는 온 천지가 한 편의 교향곡이고 웅장하고 화려한 화면이 된다.
그렇게 삶의 정면에서 우리를 살찌우던 기후가 이상하게 변질하고 있다. 장마라고 해서 잔뜩 비를 기다렸지만, 비가 오지 않는 장마인 채 지나가는 해도 있으며, 어쩌다 단비를 내리고 지나가는 장마가 아니라 집중호우를 퍼부어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기도 한다. ‘물 폭탄’이라는 말도 근래 심심찮게 듣는다. 1년 동안 내려야 할 강수량이 단 하루에 내렸다든지, 기상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이라며 기록을 갱신해 가는 기후 이변이 놀랍다.
올해의 장마도 심상치 않다. 그 옛날 정겹게 단비를 뿌리던 장맛비와는 사뭇 다른 형국을 보인다. 벌써 며칠째 비가 내린다. 그것도 앞에서 언급했던 최고의 강수량, 기상관측 이래 처음 보는 물폭탄 등, 그 심각한 피해를 전하느라 기상청은 바쁘기만 하다.
과연 이런 현상을 두고만 볼 것인가? 지구촌의 이상기후를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과연 무엇인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전전반측[輾轉反側: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하느라 빗소리를 하나 둘 헤아리는 꼴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리며 묻고 있다.
사실 기후를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의 탐욕이 저지른 이상기후 현상 때문에 하늘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구는 죽은 행성이 된다. 정도에 지나친 이상기후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문제다. 성장과 발전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문을 걸며 달려온 결과다. 유한한 지구 자원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그 남용된 자원으로 하나뿐인 푸른 별[지구]를 학대한 결과다.
그 원인을 제공한 자가 바로 인류다. 인류는 제 발밑을 파서 제 함정을 만든 꼴이다. 제가 묻힐 함정인 줄도 모르고 지구를 오염시켰으며,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린 결과, 그 보복을 당하는 꼴이 되고 있다.
이럴 때 지혜로운 부엉이에게 길을 묻는다. 헤겔[1770~1831.독일.철학자]은 난해하기만 한 자신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도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철학적 견해는 부엉이처럼 밤이 되어야, 그만큼 깊이 사유해야 말똥말똥하다는 뜻일 터이다. 시대의 어둠과 문명의 암흑기를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지, 미네르바의 부엉이에게 묻고 싶다.
어두운 밤, 베란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잠을 쫓는다. 마치 시대는 이렇게 점점 더 어두워만 가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잠이 오느냐며, 부엉이가 내 의식의 심연을 노크한다. 옛날 원두막에서 봤던 스펙터클 한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축사가 물에 잠겨 소 떼가 비명을 지르고, 산사태로 한 마을이 흙더미에 묻혔으며, 도로와 농경지가 물속에 잠긴 참상이 나를 엄습한다.
얼마만큼 이루고 가져야 비로소 자연을 자연이게 놔줄 수 있을까? 불면의 밤마저 하나 둘 빗소리를 세어가며 잠을 청했던, 불과 반세기 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새삼스럽게 미네르바의 부엉이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