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저질스러운 자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가장 저질스러운 자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 김규원
  • 승인 2023.05.15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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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19

 

사시사철 변덕부리는 나무에게

저 따위 망령이라고 욕설 퍼붓지 않는다

피었다가 지고 마는 꽃에게

저 따위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 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대비 쏟아져 초가삼간 떠내려가도

북풍한설 몰아쳐서 길을 감춰도

저 따위 하늘, 저 따위 심보라고

탓하지 않는다,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천심도 잠시 정신줄을 놓으셨는지

사시사철 욕설을 깡술처럼 마셔도

시들 줄 모르는 만든꽃,

꽃 아닌 꽃이 꽃이라고 우기는 꽃을

나 따위, 내 손가락 따위가

심고 거뒀다니

 

-졸시나 따위가 -내 서정의 기울기 9전문

 

시심은 언제나 사랑이다. 시어는 항상 사랑의 언어다. 시상은 모름지기 평화를 지향한다. 시라고 쓴 글치고 저주나 험담을 담아내는 시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아니 그런 시를 구경하지 못했다.

 

시인이라고 해서 어찌 미운 사람이 없을 것이며, 시심이라고 해서 어찌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시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눈길로 타인을 보려하기 때문에 그런 험담이나 저주를 담아낼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은 저마다 누구로부터 침해 받을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가졌다. 그것은 곧 내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자유로움이다. 이 자유는 누구로부터 유보 당하거나, 제한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다.

 

그러나 그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는 경우가 다르다. 공적인 사항에 관한 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감시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려고 그 공직을 자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인은 공동체의 공복公僕이다.

 

흔히 공직에 있는 사람을 일반인[국민]의 대표자라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대표자나 대리인이 아니라, 공적인 머슴[公僕]이다.(루소 사회계약론) 그러니 그 머슴이 일은 잘하는지, 말은 똑바르게 하는지, 매사 양심에 기초해서 처리하는지, 국민들은 감시하고 살펴보기 마련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부여받은 자리라며 전횡[專橫: 권력이나 권세를 홀로 쥐고서 자기 마음대로 함]을 일삼는 권력자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0.73%의 차이라는, 겨우 턱걸이해서 얻는 권력으로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발상과 횡포는 독재자나 가능할 법하다.

 

그렇게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권력의 독점화를 막고 균형 있는 상호 견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정립을 위한 삼권분립이 무력화 되었다.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 수반이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가?

 

권력의 심장부가 강대국 정보기관에 의해서 도청을 당해도 한 마디 항의도 못한다. 항의는커녕 오히려 도청한 나라를 두둔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 이래로 우리 민족을 괴롭혀 온 일본에 대하여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기는커녕 일본의 오만방자한 횡포를 두둔하고 있다.

 

나아가 방사능오염물질을 바다에 버리겠다는데, 바다의 생태계가 오염될 것을 알면서도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꼴이다이런 횡포와 전횡을 참을 수 없다며 전국 각지에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경향 각지의 대학교수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국승려대회, 기독교목회자모임 등에서 시국선언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런 뉴스는 공중파 방송이나, 주요 언론 지상에는 보도되지 않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국경없는기자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언론 자유 지수가 47위로 추락했다. 41위에서 43위를 오르내리며 아시아 1위를 유지해 오던 언론이 추락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 정권이 집권한 1년 만에 민주주의 지수는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에 속하는 14위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의 단계로 진입한다는 24위로 추락했다고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는 발표한다.

 

그렇게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감춰질 일이 아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1TV가 곳곳에서 실시간 뉴스를 전하며, 각종 동영상이 무시로 떠돌아다니면서 감춰진 소식들을 전하고 받은 시대다.

 

권력기관이 언론을 통제한다기보다는 언론이 자본과 권력의 심기를 알아서 맞춰주는 형국이 낳은 불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 모든 불행의 시초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그런 불행의 단초를 제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날마다 숨 쉬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하늘을 더럽히는 인간의 욕망처럼, 민주주의라는 자유로운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비민주적인 정권을 탄생시킨, 나 자신이 낳은 비극이다.

 

그래서 나만이 초연할 수 없다. 나는 이 비극적 상황과 관련이 없다고 외면할 수 없다. 결국은 좋아도 싫어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숙명 앞에서 나의 허술함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니 나 따위라고 하대하며 나에 대하여 지청구를 자청하면 조금 면피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다고 원죄마저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를 외면하는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Platon] 꽃 아닌 꽃이 꽃이라고 우기는 꽃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그 꼴을 앞으로 4년 동안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면 나 따위가 되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독재자 몰아내는 건 세계적인 특허를 가진 나라!”[장영달 전 국회국방위원장]라는 외침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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