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4월, 피는 5월
지는 4월, 피는 5월
  • 김규원
  • 승인 2023.05.08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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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18

 

 

며칠 전부터 창밖이 수상하였다

 

새가 지도 없이 천리를 오가듯이

둥지를 찾고

새끼를 낳고

길을 열듯이, 매화는

통지문도 없이 창문을 노크하더니

나의 방안 가득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길을 열듯이, 매화날개를 풀어놓았다

 

매향이 날갯짓하는 동안

라흐마니노프가 다녀가며 굵은 비도 뿌렸고

쇼펜하우어를 만나서 보슬비에 가랑이도 젖었다

방안 가득 떠다니는 말들*을 잡아 앉히느라

꽃들이 지는 동안,

나의 봄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날갯짓하듯 기꺼이 낙화하곤 하였다

 

오래 전부터 방안이 수상하였다

 

*최인호 저서부유하는 단어들을 읽다

 

-졸시창문 너머 매화 날다전문

 

4월이 열리기 전부터, 3월이 다 가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이 가곡은 나에겐 노래에 그치지 않는 아련한 추억을 심어주곤 했다.

 

특히 청소년 시절 음악 시간에 아마 이 노래를 배웠을 것이다. 노래보다 그 가사에 매료되어 방황과 불안, 뭔가 성에 차지 않는 청소년의 좌충우돌하던 심정이 이 시를 가슴 깊이 끌어안도록 한 모양이다.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사월이 저 멀리 얼씬거리기만 해도, 아니 사월이 본격적으로 꽃잔치를 벌이는 날에도, 나는 이 가곡을 흥얼거리며 4월을 건성건성 건너오곤 했다. 그럴지라도 봄은 어김없이 왔다가 가고, 어김없이 삶의 나이테를 한 켜 한 켜 불려놓고 말았다.

 

어찌 4월만이 꽃의 계절이겠는가. 그렇지만 4월의 꽃들은 겨울을 확실히 지워내는 약발 있는 꽃이어서 더욱 정겨울 터이다. 천지 가득 벚꽃이 만발하여 세상에는 벚나무뿐인 듯하더니, 봄비가 살짝 다녀간 뒤 언제였느냐는 듯이 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기저기에서, 붉은 철쭉, 하얀 철쭉, 분홍 철쭉꽃들이 장소 불문, 거리 불문, 높낮이 불문코 천지사방 대지를 덮는다. 철쭉꽃과 때를 맞추어 요즈음에는 이팝나무꽃이 장관이다. 쌀밥이 그리울 법한 춘궁기가 언제였느냐는 듯 쌀밥꽃이 지천이다.

 

창 밖에서 아무리 꽃들이 요란을 떨어도 내 삼척간두三尺竿頭는 고요하기만 하다. 필자는 천생 무명 시인나부랭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석 자뿐이 안 되는 내 책상머리 앞에 앉으면 백자나 되는 장대 끝에 선 것처럼 언제나 위태로운[百尺竿頭] 정신 상태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창 밖에는 4월의 꽃잔치가 한창인데, 내 책상머리는 언제나 썰렁한 위기감이 나를 엄습하곤 한다. 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꽃의 계절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심정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셈이다.

 

고즈넉한 봄날이다. 봄비는 때를 맞춰 내리지만, 시간은 나 하기 나름을 무시하고 나의 종복이 되기도 하고, 나의 주인이 되기도 하며, 나의 폭군이 되기도 하면서 나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렇대서 마냥 시간의 조종에 따라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안으로는 거세지만 어쩔 것인가? 거부할 수 없는 초침소리에 내 삼척간두는 더욱 흔들릴 뿐이다. “~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는심정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름 없는 항구에서, 이름 모를 항구로 시간의 배를 저어 가는데, 봄은, 봄꽃은 지체 없이 저렇게 황홀경을 연출한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시간의 주인이 되는 길이 간단치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조금 더 마음을 추스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길은 자발적 소외를 선택하는 길이다. 비본질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나를 던져두는 것이다. 그 길을 쇼펜하우어는 예술에서 찾았다. “신 노예들은 자신들의 감성과 판단을 운 좋게도 소외시켜줄 수 있는 예술을 못마땅해 한다.”고 하였다. 아주 드물게라도 소외가 발생하면 예술의 아름다움을 꿰뚫어보고 이해하고 음미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요 며칠 날씨가 한 몫을 한다는 생각이다. 흐리면 흐린 대로, 쾌청한 날씨라면 그런 대로 이 아름다운 계절에 방안에 틀어박혀 음악 감상에 시간을 내어주고, 독서에 자신을 함몰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날씨가 나를 주저앉혔다기보다는 꽃잔치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나를 삼척간두에 묶어둔 셈이다. 창밖에서는 봄꽃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무슨 참선하는 수행승처럼 방구석에 쳐 박혀 있는 것이 전혀 재미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상념들을 담은 것이 이 작품의 배경사진이다. 이 시를 다시 생각하자니, 오늘 낮에 한 지인이 나에게 던진 말이 파문을 일으킨다. “당신은 저렇게 시만 생각하느라 꽃구경도 다니지 않는다!”며 놀림인지, 지청구인지 나를 향해 친숙한 돌팔매를 던진다. 그것도 아니면 숙맥같이 맛대가리 없고 재수 없는 작자라는 악의 없는 평판이리라.

 

그러면 어떻단 말인가? 4월이 지면 어김없이 5월이 피는 것! 꽃구경 다닌다고 꽃이 지지 않을 수도 없고, 꽃구경 다니지 않는다고 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막을 길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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