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시계 앞에서
내 인생의 시계 앞에서
  • 김규원
  • 승인 2023.04.20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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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용만 / 수필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인생의 시곗바늘이 10시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중에서 마지막 한 시간은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의미 없는 세월만 보낼 것 같으니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 못 되는 것이다.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인생의 길은 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길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오던 길을 다시 걸어볼 수 없고 단 한 시간만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아볼 수는 없다.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께서 어쩌다가 이렇게 모진 결정을 했는지 못내 아쉽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 인생의 시계가 10시를 넘어 11시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황금 같은 시간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말이구나.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일어서자. 그리고 무언가를 하자.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온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해 오던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

몸뿐이 아니다. 마음도 자꾸 녹슬어간다. 전 같으면 금방 달려들었을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만 망설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에 힘들이지 않고 행하던 일들도 이제는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적당히 핑계를 대어서 일을 피하려고 한다. 구태여 힘든 일을 꼭 할게 뭐야, 한두 번 않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인생의 시계를 바라보면서 나를 돌아본다나는 그동안 세상을 잘 살아왔는가. 조물주가 주신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 내가 이루어놓은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라고 나에게 그 긴 세월을 주었는가. 이제는 내 주변이 보인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살아왔던 가족들이 보이고 이웃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고 있는 친지들도 보인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에게 베푼 은혜는 차고 넘친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해준 일들이 거의 없다. 나는 그들에게 빚진 자다.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의 시계에 남아 있는 그 시간만큼 살아갈 터인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살다가 갈까, 아니면 무언가 다르게 살아볼까. 그대로 살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고 싶다.

그럼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그렇다고 젊은이처럼 모험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사고 치기 십상일 것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않고 갈잎을 먹으면 배탈이 나서 죽는다. 솔잎을 먹되 종류가 다른 솔잎을 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다른 솔잎은 무엇일까.

그래, 그것이다. 지금까지 내 것만 챙기고 나만 배부르겠다고 아등바등 정신없이 살아왔다. 이제는 내 것을 내놓을 차례가 된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살자. 우선 내가 빚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금전적으로 진 빚도 빚이지만 은혜를 입은 것도 빚이다. 나에게 잘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은혜의 빚을 갚자.

내가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이 많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님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친척들에게서 은혜 입은 것을 갚자. 그리고 친구들이나 친지들, 이웃들에게 은혜를 갚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내 인생의 업보를 조금은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니 조급함이 누그러진다내 인생의 시계에 대하여 조금만 일찍 들여다보았더라도 지금처럼 쌓인 것이 빈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 차려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내 인생의 시계를 들여다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인생의 시계 앞에 서 있는 이 시간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새 상당한 시간이 지나갔을 것이다. 남은 내 인생의 시간을 잘 채우기 위하여 일어서야겠다. 은혜를 갚을 일을 찾아 두리번거려야겠다. 두 시간의 남은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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