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꽃이 한 몸이듯이
피고 지는 꽃이 한 몸이듯이
  • 김규원
  • 승인 2023.04.17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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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16

 

 

구순을 벌써 넘으신 가형을 모시고

봄마저 힘들어 하시는 꽃길을 걷는데

 

꽃말이듯

혼잣말을 하신다

 

아기들은 눈만 뜨면 이쁜짓만 느는데

늙은이는 눈만 뜨면 미운짓만 느는구나

 

흐드러진 철쭉꽃을 사진에 담으며,

대구가 절창이십니다, 형님!

그래도, 지고 피는 꽃은 한 몸이잖아요

 

-졸시한 몸- 내 서정의 기울기7전문

봄이 더욱 처량한 사람도 있다. 화창한 봄날일수록 더욱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으로 잦아드는 생기를 실감하며 나날을 버텨가는 사람들에게 봄날은 그저 창밖의 풍경이요, 봄날은 나와는 상관없는 생의 찬가일 뿐이다.

 

노년의 우울을 달래드려야 하겠는데, 그게 쉽지 않다. 잠시나마 잊을 수는 있다. 평소에는 홀로 지내다가 어쩌다 짬을 내어 찾아준 사람과 사람-가족과 지인 사이에서 잠시 어둡게 드리워 있던 커튼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잠시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홀로 남겨진 시간은 더욱 짙은 어둠이 휩싸곤 한다고 토로하신다. 잠시는 너무 짧고, 홀로가 너무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외출도 좋은 기회다. 사람은 기거동작起居動作이 가능해야 사람임을 익숙하게 다짐해 온 삶이 아니었던가. 노년이 오기 전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일어나 걷고 달리던 일들이 심각한 사유의 대상이 되는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앉았다 일어서고 사는 일이 언제였던가, 추억하는 시기가 드디어 왔다는 것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표가 아니냐며, 그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고서도 사람이냐고 회의하는 시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뭔가를 만들고 꾸미서 삶에 보탬이 되게 할 수 없으니, 이러고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자책하는 시간이 길다고 한탄하신다.

 

더구나 그 외출이 그냥 나들이가 아니다. 지팡이를 챙겨야지, 누구는 타지도 않는 유모차를 앞세워야지, 그도 아니면 너그러운 이의 팔에 매달려야 하는 외출이 달갑지만은 않다. 그보다 더한 것은 노인의 외출에 볼썽사나워하는 눈길이다. 이럴 때면 외출하는 발길이 더욱 움츠러든다는 것. 누가 노년의 더딘 발걸음에 언짢은 시선을 던지는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나뭇가지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즐겁게 노래하는 철부지 새들이며, 거리와 거리를 무지개처럼 달려 나가는 튼튼한 젊은 수레들이며, 어미 없이도 홀로 광야를 달려갈 수 있다고 믿는 야생마들이며, 이들은 불편한 외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곤 한다. 그렇대서 그들에게 먼지 앉은 삼강오륜을 들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봄을 맞아 노래하는 새가, 나들이 때를 만나 줄달음치는 젊음이 잘못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저 나를 주저앉히고, 내 스스로를 달래면서 시간의 언덕을 힘겹게 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에 기대어 산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밖에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조율하는 리듬 같다는 생각이다. 시간에 기댄다기보다는 내가 바로 그 시간 자체가 아니겠는가. 시간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를 있게 하는 어떤 힘이거나 맥박 같은 것이다. 들숨이나 날숨 같은 것이다. 잠시도 멈추거나 미루거나 앞당길 수 없는 흐름 같은 것이다. 그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그 흐름이 멈춘다는 것, 내 안에서 나를 조율하며 흘러가게 하는 어떤 것이 멈추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나를 빠져나간 그 시간이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이 다만 나를 빠져나갔을 뿐, 어디에선가, 누구에겐가 흐름은 기거동작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꽃나무 안에도 시간의 리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멈추지 않고 흐르면서 자신을 조율하는 흐름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철 따라 멈추지 않고 저렇게 흐드러진 꽃말을 되풀이해서 피워내지 않는가. 꽃이 지거나, 잎이 물들어 떨어지거나, 겉옷을 벗은 채 북풍한설에 몸을 떠는 나무를 보며 자칫 시간이 멈췄다고 오해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를 본 적이 있는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둥그렇게 몸피를 불리며 살아 있는 리듬을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아기들은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란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웃고, 나뭇가지가 자라고 잎이 피어나듯 기지개를 켜며 자란다. 누워만 지내더니 어느 날부터는 홀로 뒤집기를 하며 안간힘을 쓴다. 아기는 날마다 기적을 보여주며 엄마로 하여금 산통을 까맣게 잊게 하고, 가족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행복을 보여준다. 아기 안에 있는 시간의 리듬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노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기만 한다. 스스로 돌아봐도 밉상인 모습을 보면서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하신다. 하루가 다르게 눈만 뜨면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것으로 비친다. 당신께서 그렇게 보시는데, 다른 사람의 눈엔들 달리 보일 리가 없다.

 

그러나 어린나무가 제 안의 리듬에 따라 꽃을 피우듯이, 노화 역시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리듬일 뿐이다. 더구나 지상에서 가장 깨끗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아기의 리듬은 다름 아닌 노인을 거쳐 갔던 그 리듬이 아니던가. 결국 탄생과 죽음은 멈추지 않는 리듬의 연속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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