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췌장암 환자의 3개월 인생
​​​​​​​어느 췌장암 환자의 3개월 인생
  • 김규원
  • 승인 2022.09.22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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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이 용 만/ 수필가
이용만 / 수필가

숫기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말도 크게 하지 않고 웃을 때에도 소리 내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별명이 샛님이었다.

그가 친구들을 초대했다. 한턱낸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친구가 웬일이야.?” 글쎄, 무슨 일이 있기는 분명 있는가 보다.” 외국으로 이민 가는 거 아냐?”

친구들이 모였다. 그가 친구들에게 말했다그동안 친구들의 도움과 보살핌을 많이 받았는데 제대로 보답을 못해서 한턱낸다는 것이었다. 어디 아프냐는 질문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무 데도 아픈 곳이 없고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러면서 놀러 가자고 했다. 친구들에게 매일 이렇게 모여서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다니자는 것이었다. 평소에 자기주장을 않던 친구가 모처럼 의견을 내니 친구들이 모두 찬성하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 점심값을 자기가 다 내겠다고 하는 것을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내자고 말렸다.

그는 확실히 달라졌다. 지금까지 말이 없던 그가 말을 참 많이 했다. 친구들을 만나도 그냥 웃기만 하던 그가 헤이 친구!’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고향에도 다녀오고 친척들도 만나러 다녔다.

중학교 때 짝꿍을 만나러 서울에도 다녀왔다. 그는 경로당에 가서 청소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우면서 밥도 샀다그렇게 두 달을 넘기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가 친구들에게 멀리 여행을 다녀온다고 당분간 못 만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부고가 왔다. 소식을 받은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아하! 그랬었구나. 마지막을 그렇게 살다가 갔구나.”

가족들도 모두 그의 행동을 모르는 척했다. 사실 병실에서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달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나았다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들도 그렇게 살다가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친구들에게 한턱을 내겠다고 초대한 날이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날 무렵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니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엄청 고생을 했는데 치료도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약을 먹고 음식도 철저히 가려서 먹었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고 몰골이 앙상해졌다.

창피하다고 면회도 사절했다. 얼마 동안만 참으면 정상인이 되어 거리를 활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또 참으며 병원 생활을 했다. 1인실이어서 병실이 넓기는 한데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병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꾸 수척해지더니 몸무게가 40kg 정도가 됐다. 결국은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항암치료 받느라 고생하지 말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며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도 만나볼 걸 그랬다고 깊은 후회를 했다.

아버지의 일을 생각한 그는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버리고 다른 방식으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해보지 못했던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도 깜짝 놀랄 만큼 그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나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람들은 참 친절한 사람도 있다며 기분 좋아했다. 식사도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잘 먹고 오전에는 친구들과 산책도 하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시장 거리를 산책하고 공연장을 다녔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같이 연속극을 보고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해 두었다.

가족들과 친척들은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를 보면서 자기들도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그를 따라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수범(垂範)을 보였고 좋은 것을 알려주었다.

어차피 왔다가 가는 인생이다. 시한부 인생이라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버리고 다르게도 살아볼 일이다.

나도 천년만년 살 것이라 생각하고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다.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면 늘 새롭고 반가운 일들이 넘칠 것이다. 새 삶을 얻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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