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심은 사과나무에 처음으로 사과가 열렸는데 탐스러운 부사 다섯 개가 반쪽이다. 조생종이어서 벌써 내 주먹만 했다. 명절에 따서 첫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나누려 하였는데 누구 짓일까?
내 살점이 떨어진 듯 속이 상했다. 두 개는 흔적도 없고 세 개는 개미가 까맣게 달라붙었다. 어느새 정보가 유출되어 꿀맛을 알고 월동 작업을 한다.
내 이럴 줄 알고 일찍 오이 망을 오려서 사과에 씌웠었다. 그런데도 무용지물이다. 사정없이 찢고 파먹었다. 촘촘하고 질긴 과일 망을 나무 전체에 씌울 것을 그랬다. 이제는 늦었다. 범인이 누굴까? 짐작이 간다. 의심스러운 새는 보나 마나 터줏대감인 까치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늘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거사 일을 일찍 정했을 것이다. 그제까지는 멀쩡했다. 어제 밭일을 안 했으니 무주공산에 절호의 기회였다. 까치들이 배가 불렀는지 절반을 남겨두었다. 그런데 오늘 하필 주인이 나왔다. 즐겁게 후식을 즐기려 했는데 그림의 떡이다.
까치 한 쌍이 소나무에 앉더니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기색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이 끄떡없자 실망했는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까워서 반 조각 남은 사과를 따니 부지런히 채굴하던 개미들이 침략자로 알고 손등을 물어뜯었다. 적반하장이다.
작년 3월에 종묘사에서 부사 두 주와 홍로 두 그루를 사다 심었다. 퇴비를 듬뿍 주고 낙엽을 덮었다. 올해에도 이른 봄부터 잘 크라고 기도와 정성을 쏟아부었다. 정성에 감응한 듯 처음으로 꽃이 가득히 피었다.
어린 것이 무거운 열매에 쓰러질 것 같아서 꽃을 솎아 주고, 남은 꽃에서 어린 열매가 대롱거릴 때 무리한 영양 손실을 막기 위하여 따 버리는 중에 맛보기로 몇 개씩 남기었다. 그중 가장 키가 큰 부사는 다섯 개를 살렸다.
나머지 세 그루는 두 개씩 남겨 모두 열한 개다. 내 집 몫은 아내와 나, 두 개면 족하고, 위층은 며느리에 손자 둘과 손녀 몫 다섯 개, 옆 동 딸네는 1녀 1남, 네 개다. 열하나면 하나씩 돌아간다. 까치가 그것을 알기나 할까? 설사 알아도 배가 고픈 데 내 사정을 참작할 리 만무하다.
까치의 지성이나 감성이 인간을 배려하고 역지사지할 수준으로 상승한다면 실로 두려운 일이고 기적이 따로 없다. 까치가 사과를 파먹은 불상사는 방책에 소홀한 내 잘못이다. 까치는 무죄고, 설사 죄라 한들 무슨 수로 벌을 세울까? 그들 눈에는 사과가 보였고 오늘은 사람이 보일 뿐이다.
까치는 아이큐가 높다. 땅콩이 언제 고소할지 계산한다. 비닐을 씌웠는데 고소한 맛이 들자마자 비닐을 발기발기 찢고 쪼아먹었다. 모레쯤 캐려고 마음먹었는데 까치는 급해서 내일로 앞당겼다. 홍시도 나보다 먼저 챙긴다.
고향의 집안 조카가 배나무 과수원을 가꾸는데 잘 익은 최상품은 까치가 먼저 시식한다고 했다. 그물을 덮어도 귀신같이 틈을 노리니 날이 밝으면 아침부터 확성기를 요란하게 튼다. 누가 까치를 길조라고 하는가? 농사에 해를 끼치는 해조다. 서양에서도 까치를 흉조라 내쫓고 우리가 흉조라 내쫓는 까마귀를 서양인은 길조로 여긴다고 한다.
어떤 흉측한 사건이 발발할 때에 검찰이나 경찰의 조사관은 범인이 오리무중일 경우에 비슷한 범행의 전과자를 열어볼 것이다. 이번 범행의 실상은 무엇인가? 비닐 망사 천을 찢고 거의 익은 사과를 파먹었다. 부리로 쪼았다. 남은 과육이 연한 갈색으로 산화된 정황으로 볼 때 범행 시간은 어제저녁 쯤이나 오늘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물 때다.
처음부터 심증이 간 것은 까치다. 내가 짓는 밭에 어떤 새들이 찾아오던가? 꿩과 뻐꾸기, 산까치, 방울새, 까마귀, 까치다. 그중에 날마다 개근하는 까치가 제일 영악하다. 어느 해 들깨를 건조하려고 널고 새들을 막으려고 망사로 덮었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까치 한 쌍이 양쪽에서 부리로 망사를 돌돌 말고 있었다. 그물을 걷어낸 후 실컷 포식하려고 내외가 영악한 머리를 짠 것이다. 그물망 구멍을 넓히고 깊이 쪼아먹는 프로그램은 까치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출력할 수 없다.
도둑은 이튿날 범행 장소를 다시 확인하게 마련이다. 까치 한 쌍이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내려다보았다. 사과나무에 과일 망을 씌우고 있는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범인을 까치로 확정하고 수사를 마감했다.
까치가 쪼아먹다 남긴 사과 반 조각이 아까웠다. 맛을 보려고 집으로 가져오면서 아내의 반응을 예상했다. 아내에게 보이면 틀림없이 내 속이 후련하게 욕하고 나무랄 것이다. ‘그 까치들 당장 어떻게 해 버려요. 작년에는 옥수수도 다 파먹더니….’
그러나 아내의 말은 엉뚱했다. "놓아둬요. 까치가 얼마나 먹을 게 없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