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올랐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봄 언저리 어느 날이었다. 푸르름에 둘러싸인 정상에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많았다. 모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나선 이들일 것이다. 서울 시내를 조망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정다운 추억들을 쌓아가는 모습이 꽃같이 아름다웠다.
그에 비해 차가운 느낌의 쇠붙이인 자물쇠도 사람들만큼이나 많았다. 철망에도 보호난간에도 걸려있고 심지어 크리스마스트리까지 꾸며져 있었다.
본디 자물쇠는 대문이나 곡간을 걸어 잠그는데 쓰는 물건이 아니던가? 또는 문갑이나 반닫이에도. 할머니의 반닫이에는 은색 네모난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자물쇠는 할머니만이 열고 채우곤 했다. 난 그 속에 대단한 물건이 들어 있는 줄 알았다. 아니 금은보화라도 들어 있으려니 했다. 먼 훗날 어머니한테 물려준 그 반닫이에는 내가 보기엔 별스럽지 않은, 할머니가 시집올 적 가져온 혼서지와 분함과 뒤꽂이 은비녀 두 개, 그리고 전답 문서들이 있은 것을 확인하고 실망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자물쇠는 기세등등하던 할머니의 자존심이요 체통의 상징물이었다.
그 자물쇠는 내 어릴 적 장난감이 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돌 지나 걸음마를 시작하고는 깨금발을 딛고 그 자물쇠를 잡으려고 했다고 한다. 일어서서 잡으려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반복해서 잡으려 했다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재물에 호기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보관하고 지키는 곳에 쓰이던 자물쇠가 새로운 변신을 한곳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에 오른 기념이나 사랑하는 의미로 자물쇠를 걸었는데 이제는 남녀 간 사랑을 맹세하는 성물聖物이 되었다. TV 드라마와 예능에서 남산의 자물쇠를 배경으로 배우들의 데이트 장면이 자주 방영되자 시청하던 젊은이들이 열광하게 되었고, 남산 또한 그 덕에 핑크빛 감도는 데이트 코스로 발돋음 하게 된 것이다.
사랑의 자물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를 앞둔 세르비아의 한 청년과 그 연인이 사랑을 맹세하고 그 증표로 자물쇠에 이름을 적어 다리난간에 걸어 잠그고 그 열쇠는 강물에 버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탈리아 작가 *페데리코 모치아의 ‘난 널 원해’라는 소설에서 두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채운 이야기가 사랑의 자물쇠를 유행시키는 게기로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유래야 어디에 있든 남산에는 2006년 12월 6일 루프 테라스 펜스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자물쇠 열쇠 이론이 있다. 우리몸에서 일어나는 효소 반응 원리를 자물쇠 열쇠 이론이라 칭한다. 한 자물쇠가 한 열쇠에 의해서만 열리듯이 한 효소가 특정한 기질에 대해서만 특정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이론과 같이 ‘나에게 절대 필요한 사람은 너이고, 너에게 절대 필요한 사람도 나.’ 라는 뜻 일게다. 즉 너만이 나의 유일한 짝이고 더 나아가 너와 나는 영원불변 최상 커플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싶다. 그러고 보니 남산에 자물쇠을 채우는 것도 호기심 어린 유래의 모방이나 감상적인 행위라기보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사랑법이 아닌가 한다.
오래전 프랑스 몽마르트르를 여행할 때였다. 언덕 위 시크레쾨르 대성당 철문에 자물쇠들이 걸려 있었다. 숫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한 의식으로 생각하여 일별(一瞥)했다. 남산에서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몽마르트르에서 그냥 지나쳤던 나의 무심했던 태도가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지극한 여망을 담은 상징물인데 그 깊은 뜻을 거니채지 못하고 그냥 스쳤다니 여행의 의미가 퇴색해진 건 아닌지….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시작은 굳건해도 끝이 미약해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렇게 자물쇠를 걸면서까지 서로 약조했으면 어떠한 난관이 부닥치더라도 끝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하는데 조금만 풍파가 몰아치면 꽃이 시들어 버리듯 사랑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옛날에는 손가락만 걸어도 목숨 걸어 약속을 지켰고 가느다란 커플 반지로 맺은 사랑도 단단했다. 이제는 쇳덩이 자물쇠로 채워야 서로 안심이 되는 듯싶다. 도덕이 해이해지고 신뢰가 무너진 현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한편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랑이란 마음 밭에 달려 있는 것이지 자물쇠로 채워 놓았다고 변치 않겠는가? 그렇지만 꽉 채운 자물쇠처럼 영원하기를 간구하는 그들의 사랑법이 순수하고도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서양 노을빛에 물든 자물쇠들이 그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듯 긴 묵상에 잠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