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
사립문
  • 김규원
  • 승인 2022.07.07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 수필
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오랜만에 코로나 위세가 풀려 한옥마을에 들렀다, 문득 세월의 무게에 눌린 초가집과 지친 듯 비스듬히 기울어져 가는 사립문이 눈에 띄었다.

사립문은 초가집, 울타리와 더불어 곤궁한 시골 살림의 상징이 아닌가? 사립문에서 그 시절 어머니 아버지의 비곤했던 삶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사립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협력하여 대나무와 갈대로 엮었다. 만든 정성에 비해 얼마 지나지 않아 쉬이 낡아갔다. 허름해 보여도 희붐하게 새벽이 밝아오면 열리고 하루가 기우는 저물녘이면 닫히며 묵묵히 제 자리에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었다. 눈보라가 휘날려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이른 아침 사립문을 열 때쯤이면 뒤란의 대숲에서 산새들이 지저귀었다. 기분 좋아 배시시 웃으며 일어나면 청아하고 들렸으나 마음이 언짢거나 심란할 때는 여기에서 짹짹, 저기에서 짹짹짹, 떼거리로 우짖는 듯했다.

특히 요에 그림을 그려놓은 아침이나 단짝 친구 순희와 다툰 다음 날 아침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마치 나를 비웃듯이. 먼 훗날 듣는 것은 귀가 아니고 마음이거늘, 그대 어찌 새소리를 따지려는가‘? 지눌 선사의 선시*를 읽고 세상만사에 중요한 것은 마음이거늘 하잖은 아침 새소리에 일희일비한 어린 시절 순박했던 동심에 웃음이 났다.

사립문은 우리 가족의 애환을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지냈으리라. 새벽 일찍 정한수 떠 놓고 지극정성 기도하는 어머니의 간절함에 감복하고, 소달구지 끌고 논밭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허름한 모습에 연민의 정을 느꼈을 테다.

가족의 통곡 속에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떠날 할아버지 운구가 그 문을 넘을 적엔 남몰래 눈물도 흘렀으리라. 흰 눈 분분히 내리던 날 연지곤지 찍고 꽃가마를 탔던 누님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겠지? 사립문 밖까지 나와 멀어져 가는 가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에 후련 섭섭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사립문을 여는 일은 바깥세상과 통하는 일이었다. 사립문이 열리면 긴한 용무가 있어도 없어도 이웃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들었다. 장독대 사이사이 핀 봉숭아로 꽃물을 들이거나, 샛노란 살구를 바구니로 주워다 먹는 것이 이유였지만 실은 툇마루에 앉아 얘기하고픈 뜻이 더 깊었으리라.

소소한 이야기는 농사나 마을의 중대사로 한나절 이어진다. 대화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고 마음속에 옹이 진 감정들도 후련하게 걷어낼 수 있다. 굳게 닫힌 대갓집 솟을대문이나 요즈음 철문에서는 여간 볼 수 없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떡 한편, 콩나물 한 줌도 사립문 사이로 나눌 줄 알았다. 어머니는 많이 수확한 채소는 사립문 밖에 쌓아두고 필요한 이웃이 가져다 먹으라 했다. 인부들이 저녁 먹고 돌아갈 때는 된장 간장을 바가지에 소복이 담아 손에 들려주곤 했다. 그들이 사립문을 나설 때는 유난히 별빛도 빛났다.

어머니는 해뜨기 전 사립문을 나서면 어둑발이 들 때야 돌아왔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하직하자 그 빈 자리를 메우려 낮이나 밤이나 호미를 들었다. 김매고 잡초를 뽑으며 마음에 응어리진 슬픔을 솎음 솎음 걷어냈다.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잡았으리라. 많은 세월이 스쳐 간 뒤에야 풍랑 거둔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채소를 심으면서도 행복을 심는다고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사립문 밖, 초가지붕 위 하얀 박꽃은 내 어린 시절 잊을 수 없는 시골 풍경이었다. 박꽃 핀 마을은 한가롭다 못해 평화로웠다. 낮에는 기척 없던 박꽃은 달이 떠오르면 하얀 미소를 지었다. 달빛을 함초롬히 품은 박꽃은 눈이 부시도록 고왔다.

며칠 후에는 파란 잎 뒤로 백옥같은 열매가 숨바꼭질하듯 얼굴을 내밀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맴을 돌 때쯤이면 박들은 하얀 배를 항아리만큼 부풀어 올렸다. 초가집 곡선 아래 덩실한 박은 너그러운 우리 어머니만큼 후덕해 보였다. 내 유년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사립문 너머 박꽃 핀 밤이 그립다.

고향 집을 떠난 지 반세기 세월이 나이테를 그렸다.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아련히 옛 얘기를 품고 있는 허술했던 사립문이 그립다. 부족했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이웃들이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도 시나브로 손을 내밀며 따스한 정을 알뜰살뜰 주고받았던.

 

* 문비 이이성 聞非耳而性, 군독변금오 君獨辨禽嗚 - 지눌법사 선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