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충‧사선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관촌 사선대 특설 무대.
무대에서는 사선녀 선발대회에 참가한 선녀 후보자들이 사푼사푼 걷고 있었고, 곳곳에 높이 솟아 있는 애드벌룬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더해 주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 보면 참으로 화려하다. 합판으로 세워진 무대 배경도 페인트를 이용하여 선녀들이 내려와 놀 수 있을 만한 수려한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무대 뒤는 그렇지 않다. 앞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준다. 정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합판을 지탱하고 있는 각목이 여기저기 버티고 있고 삐쭉삐쭉 튀어나온 못들이 발걸음을 위협하기도 한다. 무대 위에 나온 선녀 후보들은 하나같이 웃음 가득한 얼굴에 화사한 표정으로 사푼사푼 걷고 있으나,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후보들은 누구의 얼굴에서도 웃음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모두 긴장과 초조한 표정이다. 한복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걷기 연습을 하는가 하면 화장을 고치는 사람도 있고 인터뷰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연습도 하지 않고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심사를 마친 후보들은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선 심사가 끝나고 결선에 오를 후보들을 호명할 차례가 되었다. 그 순간 모두 동작이 거의 멈추어져 있다. 자리에 앉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서 아까부터 꼼짝하지 않고 시선을 고정한 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싹둑싹둑 베어 먹고 있었다. 그의 가슴엔 ○○번의 번호 패가 달려 있었다.
결선에 오를 후보의 번호가 하나씩 불려지고 있었다. 낮은 번호부터 건너뛰기도 하면서 번호가 불러졌다. 그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25번까지 불려졌다. 순간 그의 동작이 딱 멈추어졌다.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다음 번호가 불려졌다.
“29번!” 먹던 아이스크림이 그의 손에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늘 그가 먹은 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었으리라. 몸과 마음이 공중에 둥둥 뜬 그 순간에 그가 먹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베어 먹어야 할 때가 올 수 있다. 그 순간에 아이스크림 맛을 제대로 느끼는 자 몇이나 될까. 그 순간에 아이스크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자는 세상사는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리라.
운동회 날 달리기를 할 때 1등으로 달려가던 아이가 중간쯤에서 뒤에 따라오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고는 속력을 늦추어 슬슬 달려갈 때가 있다.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이 가까이 뒤쫓아 오면 다시 속력을 내어 저만큼 달아난다. 참으로 자신만만한 행동이다. 만일 그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다면 그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면서 달려갔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때에 먹던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산에 자주 오르는 사람은 정상에 오른 뒤의 쾌감도 크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면서 느껴보는 산의 정취가 감미롭다고 한다. 좁은 산길에서,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잠시 만났던 나비 한 마리, 꽃 한 송이가 등산의 참맛을 전해 준다고 한다. 초보자야 무거운 배낭을 벗을 정상이 아니고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함은 공통적인 경험일 것이다.
고층 빌딩에서 공사하고 있는 사람도 밑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하고 위태로워하지만, 숙달되면 개미 행렬로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자동차의 행렬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그에게 아이스크림을 준다면 또 다른 맛을 이야기하리라.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이 아름다운 사람은 사는 맛을 아는 사람이다. 긴장된 순간에도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삶이 한 번쯤 오는 생활이었으면 좋겠다. 달려가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고 속력을 늦추는 그런 자신만만한 삶이었으면 살만한 일일 것이다. 비록 삼복더위에 운동장을 종횡무진 달리는 각고의 연습을 감수하고, 엄동설한에 눈밭에 뒹굴어야 하는 고난을 겪고라도 그런 기회를 한 번쯤 갖고 싶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하나가 있다면 세상사는 맛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