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의 하루
백담사의 하루
  • 김규원
  • 승인 2022.05.26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 수필
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오늘은 백담사 탐방이다. 이른 시간, 아침 해를 품은 구름이 비단 이불처럼 곱다. 단풍에 물든 산과 어우러져 천지가 휘황찬란하다. 들뜬 가슴을 가라앉히며 매표소로 향했다. 여행객 몇 명이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승객이 30명은 넘어야 출발한단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코로나가 두려워 서로 거리를 두고 앉아있다. 참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고약한 세상이다. 살갑게 손을 맞잡고 정을 나누는 세상이 언제 올지.

한 무리 여행객이 몰려왔다. 모두 설렘임과 흥분이 얼굴에 배어 있다. 그들이 도착해서야 매표구가 부산해진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도 오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은 어김없이 온 듯하다. 하기야 숨쉬기조차 각다분한 때이니 집보다는 이런 심산유곡을 여행하며 숨이라도 크게 쉬어보며 충전하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이 아닐까?.

백담사 계곡으로 접어드는 주변은 온통 단풍으로 눈이 부시다. 이슬을 머금은 잎새들이 한층 곱고 선명하다. 어느 누가 단풍처럼 아름답게 삶의 끝을 갈무리하는 이가 있을까. 자연의 조화는 늘 경이롭다.

오를수록 길은 좁고 골은 깊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고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버스는 곡예하듯 아슬아슬하다. 이것도 여행의 한 매력이려니 싶다. 조금은 위태로운 듯 떨리는 상황을 경험하는 게 여행의 묘미를 높인다는 생각이다.

긴장에 굳었던 몸이 조금 풀릴 무렵 백담사 정류장에 닿았다. 사찰에 가려면 넓은 개천을 건너야 한다. 시멘트 다리가 정교하게 놓여 있다. 옛날에는 징검다리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물장난하며 건넜던 내 모습이 어른거렸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오대산에 있는 사찰이다. 많은 국보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기념관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2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극명하게 다른 삶과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시공을 넘어 공존하는 역사가 참 아이러니다.

숲속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풍경을 댕그랑댕그랑 울린다.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맑아지고 경건해진다. 며칠 동안 묶으며 쌓인 먼지를 털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허나 속세의 홍진에 찌든 필부가 산문에 머물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 터

극락보전에 들렀다. 많은 사람이 부처님 전에 엎드려 빌고 있다. 어떤 이는 허리를 숙여 인사드리며 불경을 암송한다. 저지른 죄를 참회하거나 복을 빌고 있으려니 싶다. 아니 먼 훗날 불국정토에 들고 싶은 기원일지도 모른다.

덩달아 간절한 마음으로 비손하며 올려본 부처님의 눈빛이 왠지 싸늘하다. ‘속세의 죄에 찌든 몸이 왜 여기 왔느냐?’는 표정이다. 탐욕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한 잎 낙엽과 같을진대 지금도 미망에 빠져 있느냐며 죽비를 내리칠 듯 두렵다. 저만치 묵상에 잠겨 있는 스님이 더욱 근엄해 보였다. 그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처님 전에 얼마나 간구했을까?

허겁지겁 법당을 벗어나니 만해 기념관이 눈앞이다. 가녀린 몸매에 삭발한 두상, 그리고 승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상이 입구에서 맞아준다. 강직하면서도 고아해 보였다. 저런 강직함이 있기에 갖은 고초를 이겨내며 독립운동을 했지 싶다.

선생의 작품집이나 정갈하게 쓴 한시들, 그리고 신문에 소개된 기사가 잘 전시되어 있다. 그의 고매한 인격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우주 만물의 변화와 순리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인간의 심리를 노래한듯하다. 아름다운 시어들은 생경한 향기를 품었다. 빼앗긴 나라를 임으로 표현한 그리움이 시공을 초월하여 바람 소리로 내게 전해진다. 사무치는 아픔을 끓인 엽차처럼 담백하게 풀어낸 언어에 전율이 인다.

기념관을 나온 뒤 전두환이 머물던 요사채가 보여 발길을 돌렸다. 다른 이들도 마뜩잖은 얼굴로 그냥 나온다. ‘살아가면서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백담사를 찾은 선물이다.

사찰 뒤편의 우거진 송림이 긴 그림자를 거둔다. 들리는 것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뿐 경내에는 정적이 감돈다. 물은 삶의 의미를 깨우치라는 듯 도란도란 흐른다. 개울가에 쌓아놓은 수천의 돌탑이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갸우듬하다. 나도 정성을 모아 돌을 쌓아 올렸다. 왜 이리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지.

조금 전 오면서 보았던 오세영 시인의 시 <강물> 한 구절이 흔들리는 마음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