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가 보기만 해도 침이 살살 돌고 눈이 찡그려진다. 이렇게 신김치는 오징어 한 마리 숭덩숭덩 썰어 넣고 전을 부쳐 먹으면 제격이다. 여기에 임실치즈 솔솔 뿌려서 부치면 금상첨화다. 임실사람이라면 김치전에 치즈 가루를 뿌린다는 것은 아주 보편적인 상식이다. 김치전이 노릇노릇 익을 무렵 그 위에 치즈를 살살 뿌리면 맛있는 치즈 김치전이 되는데 치즈를 싫어하는 어르신들도 거부감 없이 잘 드신다. 김치가 치즈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음식이 우리 임실에서는 잘 어우러져서 임실 어느 맛집을 가든 치즈를 넣어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치즈 김치전은 하기도 간편하여 집에서도 입이 궁금하면 언제나 부쳐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많은 편이다. 여든이 넘으신 내 시어머니도 간식으로 해드리면 두 장 정도는 거뜬히 드신다.
김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발효음식이다. 김치는 식이섬유, 비타민 C, 카로틴, 무기질의 공급원이 되고 항산화, 항암 성분이 많은 마늘, 고추도 많이 들어있어 섭취할 수 있다.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요, 필수 영양성분이다.
맛있는 김치가 탄생하는 데는 배추의 절대적 희생이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를 빌리자면, 배추가 다섯 번 이상 죽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고 한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를 가르면서 또 죽는다. 소금에 절여지면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버무려지면서 또 죽고,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배추의 생은 마감되고 오랜 숙성의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김치로 다시 태어난다.
치즈 역시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였으니.”라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 유제품이다. 치즈는 우유의 단백질 등 주요 영양소가 발효 농축된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우유가 치즈로 변할 때는 부피가 1/10로 줄어든다고 한다. 우유가 한 몸 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치즈로 태어난다. 배추처럼 우유의 희생으로 치즈가 만들어진다. 치즈의 영양성분은 젖산균과 같은 효소로 발효되어 소화, 흡수가 잘 된다. 소화기관이 약한 환자나 노인들의 영양식품으로 좋다.
서양의 대표적인 식품인 치즈 그리고 한국의 대표 식품인 김치는 태생은 다르지만, 꽤 닮았다. 자신을 버리고 오랜 숙성의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삶이 완성됨도 그러하고 사진을 찍을 때 “치즈” 또는 “김치”라며 미소 깃든 추억을 박제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일도 신기하다. 우리나라 치즈의 원조는 임실치즈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나는 우쭐해지고 임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자부심이 든다.
임실에 치즈가 특산물이 되기까지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많이 사랑했던 지정환 신부님의 희생과 열정이 있있기에 가능했다. 신부님이 임실성당으로 부임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치즈였는데 어느덧 임실치즈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임실의 자랑이 되었다. 이 귀한 식품을 임실에 선물하시고 신부님은 2019년 4월 13일 이 나라의 수호천사로 떠나셨다.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벨기에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제의 길을 택한 분, 신부 생활 61년 중에 한국에서 60년을 살았고 이 땅에 묻혔으니 온전한 한국인이다. 가끔 뵐 때면 ‘만남’이란 노래를 즐겨 부르셨던 기억이 선하다. 우연히든 필연이든 치즈와 김치의 만남을 주선하신 신부님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해마다 임실 문협은 임실지역축제에서 시화전을 여는데 김여화 고문님은 늘 임실치즈를 듬뿍 넣은 김치전을 부치거나 김치 피자를 손수 만들어 손님을 대접한다. 그럴 때면 행사장에서 파는 그 어떤 음식보다 더 맛있다는 찬사를 듣곤 했다. 이렇듯 김치와 임실치즈는 함께 만났을 때 창조적인 맛이 된다. 물론 치즈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그래도 내 입맛에는 치즈 김치전이 제일 맞는 것 같다.
묵은지를 송송 썰어놓고 반죽하여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얹은 치즈 김치전, 생각만으로도 벌써 군침이 돈다. 임실사람들의 보편적인 먹거리인 치즈 김치전, 생각이 내친김에 나도 오늘 저녁상에 막걸리와 곁들여 행복한 맛에 빠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