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집을 위하여”
“사람 사는 집을 위하여”
  • 김규원
  • 승인 2022.05.16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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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 뼘쯤 되는 산골짜기 집 마당에

백촉짜리 백열등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날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불빛입니다

 

-정양주(1959~. 전남 화순)환하면 끝입니다전문

 

  삶의 공동체가 이상하게 변질하고 있다. 농촌-시골이 공동화되어 가는 중이다. 동네마다 빈집들이 흉가로 변해가고 있다.

  집만 그러면 좀 좋을까? 사람도 비어가고 있다. 시골-농촌에서는 60세는 청년이요, 70세는 젊은이며, 80대나 되어야 겨우 노인-어른으로 경로 대접을 받는다. 실제로 6, 70대가 마을 이장을 하는 동네가 수두룩하다. 참 이상하게 변해가는 중이다.

  그런데도 시골에서는 귀농-귀촌을 부추기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지만, 그것도 도시와 가까운 비야비도非野非都-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교통이 좋은 곳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 깊은 산골 마을이나, 교통이 좋지 않은 곳의 실정은 세 집 걸러 한 집이 빈집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사람 사는 집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더 많을 정도다. 그리고 동네 사람이라야 대부분 노인들 뿐인 것은 오래된 실정이다.

  시골-산골 마을은 자연과 가깝다. 아니 자연 그 자체다. 집의 모양이나, 집이라는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자연을 거슬리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들은 반자연적이다. 어느 건축가는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세웠다고 했다. 이 말을 나는 이렇게 새겨들었다. ‘신이 만든 자연을 인간이 파괴한 증거가 도시다라고.

  일전에 지인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실감이 갔다. 그 지인도 70대 청춘이다. 나이는 70을 넘었지만 넘치는 활동력은 청춘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분이다. 이분이 서울에 살고 있는 딸이 출장을 가는 통에 집도 보고, 손주도 돌볼 겸 딸네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딸네 집이 39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당도한 날부터 이상하게 두통이 심해졌다고 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지상으로 내려와서 공원에서 좀 휴식을 취하니 두통이 가라앉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국에서 두통약이라도 사 먹을까 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할 수 없이 나의 지인은 아내만 서울-39층 고층 아파트에 남겨두고, 본인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환하면 끝이다는 진술에서 모순형용을 생각했다. ‘환하면좋은 현상인데, ‘환하면끝이라니!? 그런데 이는 진실을 진술한 것이다. 모처럼 산골 마을 어느 집에 환하게백열전구가 빛을 밝히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곳에서 집과 함께 여생을 지켜가던 집주인 노인장께서 타계하셨거나, 아니면 더는 노구를 건사할 수 없어 자식들 집이나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시는 날 임에 틀림 없다. 그러고 나면 또 한 가구가 빈집이 되는 것이다.

  서글픔을 넘어 비참한 실정이다.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사람의 온기가 집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래서 집이 손을 탄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멀쩡한 집, 구조가 튼튼한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면 그대로 낡아서 쓸모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오래되어 낡고 볼품없는 집이라도 사람의 손때를 묻히면 사람 사는 윤기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이 사람의 손길을 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시골집에 백 촉짜리 알전구가 불을 밝혔다, 이제 이 밤의 축제(?)를 끝으로 이 집도 빈집의 반열에 들어 척추가 휘고 몸체가 퇴락해 갈 것이며, 사람 손때를 입을 수 없어 흉가로 변해갈 일만 남은 셈이다. 그래서 환하면 끝입니다라며 시적 화자는 탄식한다.

  이런 탄식에는 별다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 불빛 축제(?)가 끝나면 저 집에서는 다시는 불빛 새어 나올 일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불빛은커녕 빈집의 썰렁함이 동네를 더욱 침묵으로 가라앉게 할 것이다. 이 불빛 축제가 끝나면 저 집의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날도 없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이 맛나게 익어가던 장독대의 윤기를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불빛 축제가 끝나면 저 집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가 없다는 것은 매우 쓸쓸한 일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이웃들과 자연을 만든 신을 닮은 서사를 풀어갈 수 없다니,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래서 한탄한다. 시골 마을이 환하면 끝입니다!”

  우주가 아무리 광대해도, 의식주에 필요한 산물이 아무리 넘쳐나도, 그것을 함께 누릴 사람이 없다는 것, 이보다 더 큰 위기가 무엇일까. 자연을 외면하고 도시로만 몰리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사람이 눌러 살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회복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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