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저쪽
산 너머 저쪽
  • 김규원
  • 승인 2022.05.0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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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만/수필가
이 용 만/수필가

  고향인 임실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날은 춘향로가 끝나는 좁은 목을 거쳐 기린로에 들어서 오목대 구름다리를 지나노라면 신호등에 의해 자동차가 멈춰 서는 곳이 있다. 군경묘지 진입로인 교동 간납대 사거리인데, 자동차를 타고 올 때마다 거의 이곳에서 멈춰 선다. 그래서 늘 시선을 밖으로 돌리게 되는데 거기, 삼층 옥상에 십여 개의 분재들이 눈에 띈다. 삼층 옥상이니까 그다지 높은 곳도 아니련만 아래에서 올려다본 나무들은 높다랗게 하늘을 이고 서 있다.

  그중에서 큰 몸통에서 길게 한 줄기로 뻗어 올라간 분재가 있다. 팔뚝만 한 굵기의 줄기인데 곧장 위로 치솟아 두 갈래로 갈라져 하늘을 떠받고 있다.

  그곳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그 나무가 이고 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때로는 구름이 둥실 뜬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거기 내 마음이 있다. 날개 달고 날아가고 싶었던 소년 시절의 꿈이 있다. 우주가 있다. 칼 붓세의 행복도 있을 것 같다. 그곳을 지나고부터는 나는 나를 잊는다. 내 마음은 이미 그 분재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그가 이고 있는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편다. 나이가 들고 도시생활을 하면서부터 잃어버렸던 산 너머 저쪽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산골에서 나서 산골에서 자랐던 나는 해가 뜨는 동쪽의 산 너머 저쪽을 동경했다. 그곳엔 무언가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갑갑한 산이 아닌 끝없이 너른 벌판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큰 강도 있고, 지평선도 있고, 고호의 밀밭도 있을 것 같았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끝없는 벌판을 달려가는 기차도 있을 것 같았다. 해도 그곳에서 떠올랐고, 무지개도 그곳에다 뿌리를 내렸다. 구름도 그 산을 넘어서 달려 나왔고, 비도 그곳에서부터 부옇게 몰아왔다. 나타날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비행기도 그 산을 넘어서 왔다.

  산 너머 저쪽, 그 산을 바라보면서 가슴 벅찬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중학생 시절, 어느 해 여름 방학에 기어이 그 산엘 올라갔다.

  아! 그때 그 산을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까지도 후회막심하다. 그때 산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그 산은 영원히 나의 큰 바위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미련 없이 그 산을 버렸다. 내 마음속에 가득 차있던 꿈들이 산산이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그토록 동경하던 나의 무릉도원이었던 그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동네 뒷산과 별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끝없는 벌판도 지평선도 기차도 모두가 무지개였다. 칼 붓세의 행복은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산 너머 저쪽은 자리를 옮겼다. 가장 멀리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남쪽 산을 택한 것이다. 그 산 아래는 남원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친정 동네인 주생면 도산리 남생 부락 뒷산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시집을 온 뒤 외가의 가족들이 순창 동계로 이사를 와 버렸으니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어머니께서 가끔 뒷산에 오르실 때에 망연자실 바라보시던 산이었다. 나는 그 산을 나의 산 너머 저쪽으로 정했다. 그리곤 그 산엔 절대로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사람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비록 이루지 못하고 그 꿈에 속아서 살지라도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곳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부터 산 너머 저쪽을 잃고 살았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쫓겨 잰걸음을 걷다 보니 달이 가고 해가 가면서 소망도 잃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분재가 잃었던 산 너머 저쪽을 찾아준 것이다. 나는 그 분재를 바라보면서 그가 이고 서 있는 하늘에서 잃어버렸던 내 소년 시절의 꿈과 청년 시절의 청운의 뜻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자동차가 좁은 목을 지나면 벌써부터 나는 분재 볼 준비를 한다. 창을 닦기도 하고 열어 놓기도 한다. 때로는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푸른 신호등을 받아 곧바로 지나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왠지 허전하고 섭섭하다. 뭔가를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잠깐 바라보는 것이지만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 하고 스쳐가면서 바라보는 것 하고는 다르다.

  오늘은 임실에서 행사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옥상 위의 분재를 볼 수 있는 날이다. 거기 분재 위에 나의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산 너머 저쪽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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