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핍박한 공권력의 폐해
주인을 핍박한 공권력의 폐해
  • 김규원
  • 승인 2022.04.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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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오늘이 43, 한국전쟁의 희생자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무자비한 권력에 희생된 제주 4.3 희생자 추모일이다. 해방 후 미군정이 일본군에 충성하며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파들을 행정과 경찰 요직에 기용하면서 이 땅에 사회정의가 세워지지 못했다.

미군정은 악질 일본 순사에 빌붙어 밀정 노릇을 일삼던 자들을 경찰관으로 기용했다. 지역 정보에 밝아 한국인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전범과 다름없는 그들을 활용했다. 점령군들은 해방된 한국인들의 열망이나 반감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용된 기마경찰이 19473.1절 기념식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어린 이이를 치여 다치게 했다. 경찰이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가버리자 시민들이 돌을 던지며 기마경찰을 따라가 경찰서에서 항의했다. 경찰은 돌을 던지는 시민에게 발포하여 무고한 시민이 6명 죽고 8명이 부상했다.

이 일에 남로당 제주도당이 개입하여 총파업이 시작됐다. 미군정은 파업에 강경 대응하여 군정 수뇌부를 외지 사람으로 교체하고 전남북 경찰과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을 제주도로 보내 관련자들을 체포했다. 1년 동안 2,500명을 구금했다.

이듬해인 19483월에 고문당하던 청년 3명이 구타와 고문으로 숨졌다. 이 사건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장투쟁을 결정하고 43350명의 무장대가 서북청년단과 경찰지서, 우익 단체를 습격했다. 이른바 4.3 사건의 시작이다.

그 후 미군정의 탄압이 이어지다가 1948815일 이승만 정부가 탄생했다. 이승만 정부는 타지역 경비대를 제주로 보내려던 데서 출발한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자,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하라고 지시하여 1948년 한 해 동안 주민 15,000명이 희생되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4.3사건 관련 전국 형무소에 있던 사람들을 적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하여 처형하고 제주도에서 예비검색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무고하게 죽였다. 4.3 사건은 1954년에야 종결되었는데 그 피해자는 25천 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설익은 이념에 어설픈 공권력이 과잉 대응한 결과였다. 4.3 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한 사람들이 숱하게 희생된 사례다. 이승만은 4.3 사건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적을 죽이고 경찰과 서북청년단 · 반공청년단을 움직여 숱한 사람을 탄압하다가 끝내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 4.19를 불러와 학생과 시민을 죽이고 물러났다.

그 후 박정희 독재 시대에 걸핏하면 간첩단이 잡혔다고 신문 지면을 메웠다. 술자리에서 북한이나 공산당과 관련한 이야기를 얼핏 입에만 담아도 잡혀가 곤욕을 치르거나 간첩으로 몰려 치도곤을 당했다. 전두환 독재 시대에는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으로 정권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인물들을 잡아 강제 노역을 시키고 핍박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로 몰아 죽인 것도 공권력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 독재에 당한 사람들은 풀려나서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렇게 공권력에 희생된 사람이 얼마일까? 직접 피해가 아니어도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미친 영향까지를 계산한다면 수십만 명이 공권력에 해를 입은 셈이 된다. 숱한 사람의 목숨이 바쳐진 바탕에 비로소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가는 즈음이다.

공권력은 국민을 위협하거나 권력을 지키는 데 사용될 수 없다. 국민의 자유를 지키고 권리를 지키는 중심이자 보루(堡壘). 공권력은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순사(경찰)는 칼을 차고 다니며 식민지 조선인을 겁박하고 잔인하게 탄압했다.

그래서 우는 아이도 ! 순사 온다’ ‘울면 순사가 잡아가!’라고 말하면 울음을 그쳤다. 요즘 우리 경찰은 걸핏하면 술 취한 취객에 멱살을 잡힌다. 파출소로 찾아가 행패하며 술을 깨는 이상한 버릇을 가진 사람도 있다. 공권력이 주인에게 고분고분해진 것이다. 경찰은 주인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본연의 자세로 차츰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이다.

그러나 자격시험 한 번으로 엄청난 힘을 부여받는 검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을 때려잡던 그 거들먹거림과 안하무인의 태도를 이어오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검찰에 불려가 겁박을 당해본 사람은 그 치욕에 몸서리친다. 이명박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퇴임하자마자 검찰을 움직여 박연차 사건과 관련 여부를 조사하였다.

그때 우병우 검사가 어이 노무현 씨라고 불러 견딜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는 일화는 검찰의 태도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들의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은 이들의 가슴에 검찰 권력의 폐해를 경고하였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행하는 일은 그들 내부에서만 안다.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조직이다. 상명하복의 철저한 위계질서 아래 기소가 이루어져 재판이 진행되어야 어떤 수사가 이루어졌는지 결과라도 알 수 있다. 수사 과정에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는 증거 삼을 만한 단서나 내용이 없으면 전혀 알 수 없다. 무혐의, 불기소, 기소유예 등 그들이 덮으려 하면 그만이다.

이런 검찰조직을 손보려 했던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엄청난 파워에 휘둘려 임기 내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친구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의 힘을 빼려다가 외려 그 우두머리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윤석열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에 이어 검찰 권력 강화를 진행할 모양이다. 현재도 막강한 그들에 더 큰 힘을 실어주어 얼마나 요긴하게 써먹으려는지 모르지만, 취임 전부터 서두르는 모양새에 대다수 국민이 불안하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말이다. 공권력은 오로지 국민을 보호하고 지키는 데만 쓰여야 한다. 자꾸만 불안해지는 이 마음이 제발 나만의 걱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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