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어도 시계 초침은 여전히 돌아간다. 벌써 제주와 순천만에서는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통령 선거일도 이제 D-28일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위 공무원이다. 나라를 대표하고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아 수행하는 공복(公僕=상머슴)이다.
공무원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수임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며 공익을 추구하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갖는다.
선거에 의해 공무를 맡는 선출직 공무원으로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있고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도 공무원의 범주에 속한다.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기관과 행정 분야의 공무원들은 일정 수준의 자격을 취득해야 임용될 수 있다.
그렇게 임용된 모든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다. 대통령부터 9급 공무원까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나 입법부의 머리인 국회의장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다. 군주 시대에는 나라와 국민이 모두 군주의 것이었으므로 군주가 관리를 임명해 백성을 다스렸다.
지금은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므로 선거에 의하든 자격시험을 보아 임용되었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는 머슴이다. 머슴에도 큰 머슴이 있고 이제 일을 배우는 애머슴도 있다. 일정액수를 받기로 주인과 약조하고 일하는 상머슴은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주인 위에 군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고의 상머슴인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 손바닥에 ‘임금 王’자를 쓰고 다니며 왕이 되기를 꿈꾸는 터무니없는 후보자가 거들먹거리고 있다. 나라 꼴이 어쩌다가 이 지경인지 자다가 깨어서도 한숨이 나온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친일 공무원들이 하던 행태를 아직도 답습하고 있다. 군주국가인 일본의 공무원은 관리(官吏)였다. 왕이 임명한 관리이므로 국민 위에 군림하며 다스리는 자들이었다. 특히 식민지였던 조선의 친일 공무원들은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한 무소불위의 공직 형태를 그대로 이어받아 국민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오늘의 대한민국 공무원들이다. 임금이 주는 녹봉(祿俸)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들이 국민을 깔아뭉개며 아직도 관(官)이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했던 목민관(牧民官) 클럽이라는 단체장 모임이 바로 그런 인식을 가진 자들의 모임으로 단정할 수 있다.
목민관이란 ‘백성을 다스려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이다. 옛날 고을의 수령방백(守令方伯)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머슴들이 주인을 다스리고 기른다고 큰소리치는 이런 일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작금의 공무원 세계다.
특히 직급이 조금이라도 높은 공무원들은 목민관이라는 단어를 퍽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 세상이 바로 공무원들이 주름잡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판사와 검사,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힘이 엄청나다.
한마디로 권한은 막강하고 책임은 쥐꼬리만큼도 지지 않는다. 최근 법원의 판결은 상식선을 넘어선다. 지난 2019년 민사사건 1심이 아직도 종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경찰과 검찰은 입맛대로 수사를 진행한다. 모두가 상식밖이다.
돈이 많으면 법 따위는 우습게 피해 갈 수 있고 안 되는 일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힘과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아니하고 ‘돈’으로부터 나온다는 비아냥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특히 행정공무원들은 자신의 행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용역'을 통해 사전에 회피할 구멍을 열어두는 이른바 꼼수행정이 다반사다.
그리고 현역에서 퇴직한 후 현역 시절에 열심히 텃밭을 갈아 둔 지역에서 선출직 공무원에 도전하거나 유력 정당에 줄을 댄 사람들은 제2의 인생을 선출직 공무원으로 보내기 위해 정계에 발을 들인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뜻을 둔 단체장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반수 이상이 공무원 출신이다. 하다못해 지방의원이라도 했던 사람들이고 전라북도 부지사나 국장, 청와대와 중앙부처 관리, 국회사무처 경력이라도 가진 사람들이다.
현재 전북 도내 도지사를 비롯한 단체장 15명의 면면을 보면 부지사 경력 3명, 도 국장급이 5명, 시군 부군수와 국장 경력이 2명, 도의원 경력 3명, 기초의회 의장 경력 1명, 농협장 경력 1명이다. 10명이 일반행정 공무원 경력자이고 의회 경력이 4명이다.
결국 현 사회는 공무원 세상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하다. 정년퇴직해서 다시 고위 공무원으로 들어서는 신바람 나는 인생을 위해 지금 숱한 공무원 경력자들이 지방선거에 문을 두드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다.
이처럼 단체장으로 제2의 인생을 노리는 사람만 아니라 지방의회를 두드리는 공무원 출신도 상당수 있다. 모아놓은 재산과 먹고 살 만큼 들어오는 연금만으론 욕심을 충족할 수 없다. 공직에서 일하면서 맺은 인연과 인적 기반으로 지방의회에 들어서는 일은 특정정당 줄만 잘 잡으면 식은 죽 먹기다.
공무원 출신이 차지하는 자리는 그뿐만 아니다. 각종 문학단체, 취미활동 단체, 사회활동 단체의 장도 퇴직공무원들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그들이 맡아야 행정기관의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으니 점점 공무원 출신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늘어간다. 바야흐로 공무원 세상이다.
철밥통 공직이라는 말이 나왔듯, 그들은 대단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징계도 우물우물 잘 넘어간다. 최근 전라북도 공무원 몇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하지만 어인일인지 직위해제는커녕, 징계 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는 올해 초 음주운전 공직자에게는 무관용의 원칙을 강조했으나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징계마저도 힘있는 자와 없는자의 차이가 나는 걸까?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회 국정감사 때,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관련 문제를 비롯한 공직 비리 문제를 두고 “수사에만 맡겨놓지 말고 직무유기 시비가 없도록 공무원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해달라.”라는 국회의원의 당부를 들은 송하진 지사는 “돌아가서 위법 부분이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말 검토했는지, 위법 사항에 대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꿩 구워 먹은 자리’인 듯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대로 공무원 나리들이 한 일이니 그저 모르는 체 해야 하는지….
공무원은 진정 공복(公僕)인지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