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대로
그런대로
  • 전주일보
  • 승인 2022.01.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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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수필가
백 금 종/수필가

  재롱둥이 외손자가 왔다. 매번 와도 반가운 것이 손자이고 보면 핏줄을 이어받은 살붙이기 때문이리라. 한동안 안고 뽀뽀하고 온기를 느끼며 사랑을 주고받았다. 녀석도 분위기를 파악한 후로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리저리 뛰며 난리를 피워댔다. 아무리 제 엄마가 말려도 붕 뜬 풍선처럼 꺼질 줄 몰랐다. 그렇다고 나무라거나 꾸짖어서도 안 된다. 강제적으로 제어해서는 더더욱 않니 된다. 상황을 바꾸어서 다른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게 하는 것이 좋은 약이 되는 수가 있다.

  데리고 간 곳은 국립 전주 박물관이었다. 마침 이 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종이체험학습 코너가 있었다. 색종이를 접어서 나비, , 고양이, 토끼 등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애완동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녀석이 의외로 집중력을 보이면서 열심히 한다. 집에서 난리를 피우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어린아이의 주의집중이란 단 몇 분도 지속하기가 어려운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면도 있구나! 생각했다. 두어 시간 체험학습이 끝나자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실외 주차장에 주차하려는데 녀석이 내리려 한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기에 조심히 내려 주었다. 녀석이 어느 곳에 있는지 확인하면서 주차하려니 신경이 쓰였다. 조심조심 주차했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한마디 했다

  “그런대로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제 네 살밖에 안 되는 녀석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간 30년 가까이 운전대를 잡고 살았어도 나의 운전 솜씨를 평가해 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자동차 보험 회사라고나 할까? 별로 할증이 안 붙었으니 그것이 바로 나의 운전 수준이리라. 그런데 오늘 외손자가 명쾌하게 한 마디로 운전 솜씨를 평가한 셈이다. 잘하는 수준은 아니고 보통 그런 정도라고. 기분이 씁쓸하였다. 그래도 귀여운 것을……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우리 부부는 가끔 손자가 한 말을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나절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  그런대로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때도 있었다. 지난가을 커튼을 새로 달기 위해 의자 위에 올랐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아내는 왼쪽 팔 골절상을 입었다. 문제는 아파서 고통을 받는 일이지만 생활에 있었다. 두 손을 사용하던 사람이 한쪽으로만 하려니 불편하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연 집안 살림살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아침 일어나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기는 말할 것 없고 아내가 옷 입는 것마저 도와준다. 그런데 잘못된 것을 지적하거나, ‘잘하는 것 하나도 없다.’며 지청구를 늘어놓는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말이 많으려니 싶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 더 열심히 해서 칭찬은 못 듣더라도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야지.’ 식기는 빡빡 소리가 날 때까지 씻고, 설거지통 주변의 물기도 말끔히 닦았다. 특히 가스레인지 위의 국물 자국을 닦아 번쩍번쩍 윤이 나게 했다. 잡다한 일들을 한시도 쉬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곤 했다. 이런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 아내가 모처럼 한마디 한다.

  “그런대로

  주차하면서 손자한테 그런대로라고 들을 때는 씁쓸하였는데 아내한테 들으니 조금 얼굴이 펴졌다. ‘그런대로라는 말도 경우에 따라 그 느낌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그런대로라는 말을 듣고 불현듯 나의 인생길을 돌아보았다. 손자의 말대로 그런대로살고 있는지 아니면 아내의 말처럼 그런대로살고 있는지? 명확한 평가야 내릴 수 없지만 스스로 자평 한다면 손자의 말대로 그런대로살아온 인생이 아닐까?.

  그저 그런대로 살아온 나는 도전을 해본 적이 없고, 가파른 능선을 오른 적도 없다. 그냥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밀리면서 여기까지 흘러온 셈이다. 이룬 것도, 모은 것도 없고 날개를 활짝 편 적은 더더욱 없지 않은가?

  저마다 최선이라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지만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이루어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헛짚어 애만 쓰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그 상황에 맞게 처신하며 올곧게 사는 것에 의미가 있으리라. 가끔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주변을 돌아보며 관조하는 인생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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