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새 아침, 바깥 날씨가 영하 9℃를 가리키는 새벽이다. 베란다 창을 열어 밤새 채워진 잠 냄새를 몰아내고 이마가 짜릿하도록 찬 공기를 불러들인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포근한 방 안에서 실감하지 못했던 바깥세상의 차가운 현실이 다가왔다.
그 찬바람을 맞아들이며 어젯밤 구순(九旬)이 낼모레인 형님과의 전화가 생각났다. 당신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보수언론이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주장에 완벽하게 동조(同調)된 생각으로 가득한 대화에 어이가 없었다. 현실을 들어 반박하면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얕은 주장은 근거조차 없다.
노년층의 개발독재 시대를 그리는 향수(鄕愁)는 병(病)처럼 그들의 머리에 뿌리 깊다. 가난과 치열한 생존 투쟁의 시대를 살아 온 이들에게는 정부의 복지정책마저 못마땅하다. 경쟁사회에서 계층 사이에 벌어진 격차를 줄이려 정부가 간섭하는 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아서 일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건 공산주의이거나 사회주의 아니냐고 한다. 자신들이 나라의 복지정책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막연하게 구시대의 논리에 뇌동(雷同)한다.
계층 간 갈등을 봉합하는 해
갈등을 조장하는 무리에 의해 우리 사회는 갈라지고 붕괴하여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가장 단단해야 할 가족 단위조차 분열하여 주의도 신념도 아닌 갈등에 신음한다. 친구 사이도 정답던 이웃과도 생각의 차이가 갈등으로 개입하여 굳어간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얼굴을 대하고 마음을 풀 기회마저 줄었다. 점점 각자의 생각 속에 매몰되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가운데 노년층은 더욱 생각이 굳어간다.
노인복지관도 닫아서 접촉하는 정보는 여태 왜곡하고 조작하던 불량 언론들과 편향 유튜버들의 비틀어진 정보뿐이다. 불량정보에 길들어 자꾸만 입맛에 맞는 정보를 찾다 보니 점점 깊이 빠져든다.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을 설득할 방법은 거의 없다.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는 게임 세계를 겪으며 살아온 젊은 세대는 게임에서 최신 아이템을 지니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듯, 최신 정보와 타협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에도 진리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안다.
변화무쌍한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그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노인층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차원을 넘어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나이 든 윗사람의 훈계에는 듣는 척, 쉽게 대답하고 금세 잊어버린다. 계층 간의 차이와 갈등은 서로 다른 행성 사람들처럼 낯설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이런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거리두기에 만남도 대화도 사라진 오늘이다. 이런 상황이 더 이어지면 점점 단단히 고착하여 회복 불능의 사태에 이른다. 갈수록 신문 사회면에 세대 갈등이 늘어가는 게 증거다.
이런 일은 정부와 자치단체, 종교계와 학교가 나서서 중재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모습, 서로를 이해할 때 어떤 멋진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주고 서로 보듬는 즐거움을 알려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신 냉전 시대
구랍 30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에 대해 대만의 분리독립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1992년 수교 당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양안(兩岸) 평화와 발전의 기초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중국과 소련이 힘을 합치면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최근에 위구르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 보이콧을 선언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 일본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물건을 파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의 교역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일본이고 다음이 한국이었는데, 올해 상반기 안에 한국이 2번째 교역국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까지 겹쳐있어서 중국에 등을 돌리고는 살 수 없다. 북한의 군사력은 중국의 도움이나 보장이 없다면 우리 군사력을 감당할 수 없다. 북한이 중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우리와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이런 역학관계를 유지하지 않고는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우리가 불안하면 세계가 우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투자도 들어오지 않는다. 보수 세력이 미국을 따르고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우리 스스로 불행 속에 뛰어들어 망해버리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새해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지극히 아슬아슬하다. 풀어갈 과제가 겹겹이 둘러서 있고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어떤 어려움에 놓일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올해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
슬기롭고 과감하여 머뭇거리지 않는 대통령이어야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다. 이 시대를 헤쳐나갈 인물은 상인처럼 계산에 밝고 칼날처럼 냉정한 시각으로 급박하게 몰아치는 주변 환경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성인군자도 이 시대를 무난하게 헤쳐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교활할 만큼 재빠르고 능숙한 실무형 지도자가 이 난관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도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높은 파도를 이기고 항해할 선장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