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에게는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능숙한 사람이 보면 한없이 어설프게 보이지만 초보자에게는 작은 기술 하나라도 터득하면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자랑스럽고 스스로 대견해한다. 해냈다는 성취감은 크든 작든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초보자가 작은 성취를 이루고 즐거워하면 좋은 때라고 하면서 같이 기뻐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전주 공설운동장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정원수 사이에 50m쯤 되는 간이 육상트랙이 있다. 육상 선수들이 개별적으로 연습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지 보통 사람들도 선수처럼 기분을 내면서 달리기 연습을 해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지 주로가 다섯 개나 있는 그럴듯한 트랙이다. 여기에서는 달리기를 연습하는 사람은 없고 가끔 할머니들이 자전거를 배운다. 햇볕에 그을릴까 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모자가 바람에 날릴까 봐 수건으로 모자를 동여맨 채 자전거를 배운다. 대부분이 자전거를 탄다기보다는 끌고 다닌다. 조금 나은 사람은 한 발은 자전거에 올려놓고 한 발은 땅을 딛고 밀고 간다. 그러다가 두 발을 다 올려놓고 몇 바퀴 굴러가면 환호성을 지른다.
도무지 좋을 것 같지도, 자랑스러울 것 같지도 않은데 자랑을 하고 그것을 부러워한다.
“댁은 어쩌면 그렇게도 자전거를 잘 타우?”
“잘 타기는요. 빨리 달리지도 못하는데요.”
그는 아주 신이 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이 할머니들에게는 자전거를 타는 일이 가장 신나는 일이요 자전거를 잘 타면 스타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해도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 우선 자식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균형감각도, 순발력도 부족한 노인들이라 사고 내기 딱 좋은데 어느 자식이 나이 드신 부모님께 자전거를 타라고 권할 것인가. 그래도 그들은 신이 나 있다. 일단은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수없이 되뇌어 보지만, 그 고민 속에서도 어느 한구석이라도 나름의 즐거움이 없고서야 어찌 사는 맛을 알 수 있으리오. 그 즐거움을 어떤 사람은 지배욕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봉사에서 찾으며, 어떤 사람은 학문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서 찾는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모으는 데서 찾는 사람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단기적으로는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초보자의 성취욕에서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고 그 일을 성취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의 단계까지는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처음 시도할 때 초보자의 즐거움은 누구나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내가 접해 보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 어느 한 가지를 택하여 배우기 시작한다면 초보자가 되는 것이요, 그것을 익혀 나간다면 초보자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밤을 새워 글을 썼고 난을 캐러 다닐 때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 산을 헤매고 다닌 적도 있었으며, 수석을 채취하러 다닌다고 남들이 몰래 가서 용변이나 보는 갈대밭까지 헤치고 다녔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어딘지 할 일을 잊은 것처럼 허전하기까지 하였다.
초보자의 특징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덤빈다는 것이다. 조금만 잘해도 신이 나고 사는 맛이 난다. 그때는 공자 앞에서도 문자를 곧잘 쓴다. 별로 잘하지도 못하면서도 입에 거품을 물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전문가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자신은 지금 살맛이 날 만큼 신이 나 있으며 그만큼이라도 안다는 것이 대견스러운 것이다.
초보자는 즐겁다. 초보자는 신난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상한 것인가 한탄하느니 무언가 한 가지를 택하여 초보자가 되어볼 일이다. 수만 가지 못해 본 일 중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시도해 볼 일이다. 인생에 활력을 찾기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보약을 먹는 것보다 더 힘이 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내가 왜 여태 이런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던가.’